고준위 특별법 제정 더는 미루면 안 된다[기고/유기풍]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유기풍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 총장
유기풍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 총장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지난 46년간 원자력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이용해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의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원자력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덮어두고 있었다. 바로 방사성폐기물 문제다.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데 20여 년간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안면도, 굴업도, 위도, 영덕, 울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역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보다 훨씬 더 관리가 어렵고 많은 갈등이 예상되는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더욱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전 부지 내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가 지난 46년간 발생됐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2030년까지는 발전본부별로 건식저장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또 정부 주도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처분기술 실증에 필요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건설도 올해 추진된다. 영구 처분시설 부지 선정·건설·운영 전까지 현재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확장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처분 전 중간저장시설을 어디로 할 것인지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부지 선정 절차와 주민의견 수렴, 지역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특별법은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각각 2건씩 제정 및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화하고 투명한 사업 추진으로 지역 및 세대 간 부담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고준위 특별법과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법이 발의만 되고 폐기된 적이 있다. 이번 법안도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자동 폐기될 운명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저장과 처분은 원전 확대 또는 탈원전 등 정책 영역과는 무관하게 대규모 원전 운영국이면서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다. 이미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거쳤고, 법제화를 통한 처분장 확보 추진을 권고한 바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면 영구처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적기 건설에도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환경단체들의 지적처럼 중저준위 방폐물보다 훨씬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사용후핵연료를 언제까지나 임시 저장시설에서 관리할 수는 없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일은 국민 모두의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환경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별법의 마련을 22대 국회로 또다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유기풍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 총장
#고준위 특별법#방사성폐기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