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市場에서 市長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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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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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집을 살 때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계속 오른 곳이 좋을까, 환경이 쾌적하고 앞으로 교통도 편리해질 것 같은 곳이 좋을까. 주말 날씨를 예측하는 데 과거 날씨에 대한 자료와 통계를 기반으로 할 것인가, 슈퍼컴퓨터 같은 장비를 동원하여 현재의 기상 상태를 살필 것인가.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의 경험과 통계를 따르는 것과 나름대로 수집한 현재 상황의 정보를 따르는 것, 과연 어느 쪽이 성공 확률이 높을까.

합리적인 사람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를 수집한 뒤 그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판단한다. 과거의 경험과 통계는 이미 현재에 반영돼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정말’ 새로운 정보만이 그들의 예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령 그 예측이 조금 틀린다 해도 체계적인 오차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옳다’고 예측된다. 여기서 합리적(rational)이라는 용어는 정보를 효율적(efficient)으로 활용한다는 뜻이지 이성적(reasonable)으로 판단한다는 뜻이 아니다.

합리적인 사람으로 구성된 합리적인 시장에서는 정부의 어떤 거시경제 정책도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 기대 가설(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이다. 단기적인 재정 통화정책으로 국내총생산(GDP)이나 실업률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자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론이다. 이 이론으로 1995년 로버트 루커스 교수에 이어 올해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는다.

선거에 이 이론을 적용해 보자. 투표의 방식과 절차에 대한 시비가 거의 부각되지 않는 요즘, 선거가 끝나면 패자는 항상 ‘겸허한 승복’을 발표하고 언론은 ‘민심의 승리’니 ‘준엄한 심판’이니 ‘절묘한 선택’이니 하는 평가를 내린다. 유권자 집단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유권자에게는 후보자의 과거 경력과 행적은 새로운 의미가 없다. 이미 그들의 가늠 속에 충분히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 후보자의 부모, 배우자, 자녀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당사자의 재산, 학력, 병역, 발언, 활동 등에 대한 부정적인 과거 들추기는 득표에서 ‘초과수익’을 얻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투표 당일의 날씨는 초과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득표 전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북풍(北風), 병풍(兵風), 세풍(稅風) 같은 선거일 직전의 정치적인 바람은 어느 정도 초과수익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초과수익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몇 번의 경험으로 북풍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냈고, 어설픈 ‘바람’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위험이 더 커 보인다. 유권자가 점점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공개적인 지지, 곧 ‘안풍(安風)’으로 특정 후보가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합리적인 시장에서 ‘안풍’은 이미 반영돼 있기 때문에 초과수익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예측이 조금 틀릴 수 있어도 체계적인 오차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합리적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초과수익을 얻으려면 과거의 날씨가 아니라 현재의 기상 상태를 살피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추악한 과거 들추기가 아니라 따뜻한 민심 보듬기가 적확한 전략이다. 요행의 정치 바람을 기대하기보다 신념으로 정책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타당한 전략이다. 합리적인 시장(市場)에서 시장(市長)이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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