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완용’ 운운한 정동영 의원 양식 의심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민주당 최고위원인 정동영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2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그는 “우리는 개방형 통상 국가를 지향하는 만큼 미국과의 FTA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로 경쟁력 강화와 국민소득 증가가 기대된다는 말도 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FTA 지지를 설득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랬던 정 의원이 그제 국회에서 “한미 FTA는 ‘낯선 식민지’이고, 국회가 이를 비준하는 것은 을사늑약을 추인하는 것과 같다”고 강변했다. 그는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미국과 한통속이다. 옷만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한미 FTA가 을사늑약이라니, 대한민국이 미국의 속국이라도 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에 총독부라도 세운단 말인가. 3선 국회의원에 장관과 여당 의장을 지내고 4년 전 대선 때는 집권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치인의 인식 수준이 겨우 이 정도라니 참으로 실망스럽다. 김 본부장이 이완용이라면 2006∼2007년 한미 FTA 협상을 성사시킨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권에서 당정(黨政)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정 의원은 뭐가 되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국은 전후의 폐허 위에서 경제력을 키워 주요 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좁은 국토에 자원도 빈약한 대한민국이 찬란한 성공의 역사를 쓴 것은 개방적 통상 국가를 지향하며 세계시장에 줄기차게 뻗어나간 결과다. 과거 시장 개방의 폭을 넓힐 때마다 설익은 민족주의에 빠진 학자들은 한국이 망할 것처럼 반대했다. 지금도 어떤 경제학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FTA를 맺으면 당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오도(誤導)한다. 열악한 경제수준에서도 개방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키운 나라인데 FTA로 경제영토를 확대하면 왜 망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 의회가 한미 FTA 비준을 완료한 뒤 일본 언론들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일본 기업들은 한층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한국에 뒤진 FTA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 나서라고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정 의원은 일본의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 의원은 일부 극좌세력에 영합하는 발언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경제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기 바란다.

지금의 민주당은 2007년 한미 FTA 협상을 성공시킨 정권의 본체다. 자신들의 공적(功績)에 스스로 침을 뱉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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