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한반도 긴장 고조에 일차적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치 이런 상황이 우리 정부의 잘못된 대북(對北) 정책에 기인한 듯한 논조를 펼쳤습니다.” 일본의 친북(親北)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 2월호 기고문을 통해 재직 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발표한 사과문이다. 그는 ‘세카이’ 기고문에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평화지대 구상을 밝히자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의 장성급과 상의한 뒤 수락했다”고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전직 국정원장이 자기가 속했던 조직으로부터 고발당하고 사과문까지 발표한 것을 보며 역대 국정원장들의 자질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수장(首長)에 오른 첫 사례였지만 함량 미달의 행태를 거듭 보여줬다. 그는 국정원장 시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게 납치된 한국인 인질 19명을 석방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측 공작 요원을 노출시켰다. 2008년 총선 출마를 의식해 중학교 동창회장을 맡은 사실을 자랑하고 고향 주민의 안보 견학에 열성을 보였다.
김대중 정권 초기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최근 “저처럼 정치에 오염된 사람은 정보기관 수장 자격이 없다”고 자성(自省)의 말을 했다. 이 전 원장도 재임 시절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대공(對共) 전문요원 581명을 대량 해고해 해당 직원들로부터 ‘정권이 사주한 대량 학살’이라는 반발을 불렀다.
원세훈 현 국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근거리에서 보좌한 행정관료 출신으로 정보 업무와는 거리가 멀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 우리 군이 북한 동향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최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을 놓고서도 혼선을 빚은 사태는 국정원의 정보 역량 부족과 관련이 깊다. 올해 2월 국정원 요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에 잠입했다가 들통 난 것은 아마추어 국정원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국정원은 모 사립대 총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정평이 난 미국 연방수사국(FBI) 로버트 뮬러 국장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10년 임기를 채우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2년간 더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국정원이 지난주 5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 국정원장들은 대통령 5년 임기마다 서너 명씩 교체됐다. 최고의 전문가가 수장이 돼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업무에 전념하는 국정원장상(像)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