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北-中의 ‘재스민 혁명’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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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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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시간이 좀 흐른 이야기지만, 1월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게이츠 장관의 방중 도중 중국산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이 있었다. 회담에 나온 중국의 문민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해 중국의 문민 통제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한국군의 천안함 침몰사건 직후 서해에서 실시된 한미 군사연습에 대해 중국 정부보다 먼저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힌 것도 중국군 관계자였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듯이 혁명 제1세대의 중국 지도자들은 정치인이면서 동시에 군인이었다. 이후에도 혁명의 기억이 농후하게 남아 있는 동안에는 인민해방군이 중국 공산당의 군대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와 군사 지도자가 분리된 현재에도 중국의 군대는 계속 정치에 종속돼 있는 것일까.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

여기에서 유추해 보자. 북한도 군대가 독립적으로 행동해 천안함 침몰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만약 군대가 폭주한 결과라면 사태는 매우 심각한 일이지만 그 같은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북한은 여전히 제2세대의 독재자가 노동당과 군대를 총괄해 통솔하고 있다. 비슷한 듯해 보여도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스민 혁명’이 두 나라에 미칠 영향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화와 정보혁명이 진전한 중국에서는 공안당국이 파급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통신은 철저하게 봉쇄돼 있고, 티베트나 신장위구르는 물론이고 베이징과 상하이의 중심가에도 제복과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깔려 있다. 집회 예정지에는 어김없이 계획에 없던 도로공사가 시작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북한의 도시는 일각의 희망적인 관측과 무관하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는 30만 대의 휴대전화가 있어도 ‘재스민 향기’조차 맡을 수 없다. 집회 예고를 휴대전화 e메일로 보낸다 해도 발신자는 반드시 색출될 뿐 아니라 수신자마저 혐의를 뒤집어쓸 수 있다. 즉시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다.

경제발전을 위해 글로벌화와 정보혁명을 용인하면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 중국의 봉쇄는 언젠가 한계에 도달하게 되겠지만 설사 계속 봉쇄에 성공한다 해도 경제발전이 불가능해진다. 요컨대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충 관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중 양국의 공안 관계자끼리 쌓고 있는 긴밀한 인적 유대는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조선노동당 창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김정일의 바로 옆자리에서 북한군을 열병한 사람은 공안부문을 담당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다. 또 올해 2월 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평양을 방문해 “북한 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됐다”고 밝힌 이도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이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군대의 폭주가 아니고 ‘긴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도발’이라는 것은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평화공세’로 증명되고 있다. 분단체제에서 무력도발이 한계에 도달하면 다음 순서는 평화공세다. 전면 전쟁을 회피하는 범위에서 무력과 평화의 양끝을 오가는 ‘진자운동’인 셈이다. 대화공세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다시 무력도발이 실행될 것이다. 다만 다음의 도발은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시험발사나 핵실험일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미 우라늄농축시설의 존재를 알렸고 북-미 교섭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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