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생큐! 곽노현 교육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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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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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되자 서울 강남의 학원가에서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는 선거 전부터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곽 교육감에게 표를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지방선거 직후 이 얘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솔직히 학원가의 ‘억지 희망가’로 치부했었다. 학교 간 학생 간의 학력 경쟁을 지양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진보성향 교육감을 학원 종사자들이 지지한다는 것이 모순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곽 교육감이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이번에는 강남의 학부모들 입에서 “곽 교육감이 당선된 게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부자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는 진보성향 교육감을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인 강남 학부모들이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에 교육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매력이 곽 교육감에게 있는 것일까.

하지만 불행히도 둘 다 아니다. 답은 곽 교육감의 정책에 있다.

곽 교육감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 대비한 수업을 하는 학교를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학교장 경영능력평가에서 학생들의 학력증진 성과를 평가하는 항목을 제외했다. 또 학생 동의 없이 방과후학교나 자율학습을 진행하는 경우, 방과후학교의 학생 참여율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 학교별로 특정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참여율이 전체 학교의 평균 참여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경우에는 조사를 벌여 강제성이 드러나면 교장 경영능력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과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서울 강남과 강북 학생들의 학력 격차는 이제 비밀이 아니다. 그 격차를 만든 원인 중에는 사교육 영향도 분명히 있다. 이 때문에 사교육 혜택을 받기 힘든 지역의 학생들이 믿을 곳은 학교뿐이다. 학교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학교의 학원화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앞으로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생들을 붙잡아 놓고 공부시키는 학교장은 최하 평가를 받을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당연히 그렇게 배짱 좋게 처신할 교장은 없을 것이다. 한 교장은 “첨단 무기로 무장한 학원들 앞에서 학교는 오히려 무장해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 학원가의 아이러니를 푸는 코드가 여기에 숨어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안 시키니 학부모들은 학원에 더 의지할 것이고 그렇게 될수록 경제력이 좋은 강남지역 학생들이 비교 우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상과 현실이 다른 곽 교육감의 정책은 또 있다. 무상급식이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점심 급식을 지원받는 저소득층 학생 비율은 15%였다. 금천구 관악구 강북구 등 8개 구에서는 이 비율이 20%를 넘는 학교도 있었다. 반면 서초구 송파구 강남구 등 강남 3구는 이 비율이 5% 미만인 학교가 많았다. 따라서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강남 3구가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곽 교육감은 많은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 정책들이 ‘훌륭한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서 교육 사다리를 빼앗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ruchi@donga.com



▲동영상=오세훈시장 뿔났다!-곽노현교육감과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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