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없는 사람, 젊은 사람이 힘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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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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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이사 한번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얼마 전 2년 계약이 끝나 전세를 구할 때의 일이다. 대다수 집주인은 임차인의 소득증명서와 모든 가족의 신분증, 보증인의 재직·소득증명서를 요구했다. 심지어 다니는 회사의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포함된 재무결산서를 내라는 곳도 있었다. 미주알고주알 개인정보를 제출한 후 며칠간의 심사를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보증금 외에 ‘집을 빌려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뜻에서 월세 1, 2개월분의 레킨(禮金)을 낸다. 레킨은 이사 나올 때 돌려받지 못한다.

사는 동안 못 하나라도 박거나 마룻바닥과 벽지에 흠집이 나면 보증금에서 고스란히 깎인다. 이사를 나갈 땐 청소대행 전문회사의 청소비까지 원상복구비란 명목으로 임차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던 집에서 용케 전세계약을 연장해도 월세 1개월분의 갱신료를 낸다. 집 없는 사람은 눈물 날 지경이다. 송사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유독 전세와 관련해선 소송을 많이 하는 이유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집을 가진 사람은 나이 든 세대가 많고 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주로 젊은이다. 은퇴 후 달리 소득이 없으니 임대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집 하나를 무기로 없는 사람을 마른 행주 짜내듯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웃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피아노 불가’를 조건으로 내거는 주인이 많아 아이들이 집에서 피아노를 치기도 어렵다. 집을 소개해주던 부동산 중개업자는 “내가 어릴 적엔 저녁 무렵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 피아노 소리가 들렸는데, 요즘 아이들은 불쌍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젊을수록 돈이 없고 앞으로 돈을 벌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자산은 60대 이상 세대가 갖고 있다. 이들은 젊었을 땐 자고 나면 월급이 뛰는 고도성장기에 살았고 퇴직해서는 저축과 연금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자식 세대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용케 취직해도 비정규직이 많다. 이들에게 저축은 사치다. 취직도 결혼도 마다하고 사회와 연을 끊고 집에만 틀어박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점점 늘어간다. 히키코모리가 3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연령대도 점점 높아져 40대 히키코모리도 적지 않다. 동정론도 있다. 며칠 전 한 젊은 교수는 “히키코모리를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사는 퇴폐적 인간’이라며 비판하지만 누군들 좋아서 그러겠느냐”며 “취직은 안 되지, 집 밖에만 나서면 돈 들지, 게다가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으니 달리 선택이 없는 젊은이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민의 발’이라는 지하철을 두세 번만 타면 우리 돈으로 1만 원은 족히 드는 현실이니 서민에겐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무서울 법도 하다. 살인적인 교통비를 생각하면 웬만하면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 게 상책일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만난 한 원로 역사학자는 “사람에 비유하면 일본은 고령기, 한국은 청년기”라며 “일본은 청·장년기에 듬뿍 벌어놓은 걸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노인과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일본인이 공감하는 인식이다. 그런데도 국가 미래를 설계해야 할 정치인들은 허구한 날 정치싸움에만 매달린다. ‘일본도 정치는 3류’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고비용을 견디지 못한 기업은 해외로 공장을 옮긴다. 그러는 사이에 젊은이들은 공동체와 나랏일에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사회구조와 사고방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와 닮았다는 일본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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