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북한이 고마워하는 줄 아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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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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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분에도 중국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기는커녕 대화와 절제만을 강조한다. 중국은 올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까지만 해도 중국과 북한은 혈맹 퍼포먼스를 벌여 전 세계에 양국의 우애를 대놓고 과시했다. 포격 도발 직후인 11월 2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북한에 묻힌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에 화환을 보냈다. 마오안잉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으로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부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올해 가을 양국 혈맹(血盟)의 아이콘인 그의 묘소를 직접 참배했다.

약 두 달 전인 10월 25일 중국군 참전 60주년 기념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중앙(CC)TV는 34부작 드라마 ‘마오안잉’을 절찬리에 방영한 데 이어 포격 도발 다음 날 평양에서 이 드라마 시사회를 가졌다.

중국은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대한 무차별 포격이라는 북한의 만행에도 오히려 냉정과 절제를, 그것도 주로 한국에 주문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중국의 태도에서 얼마 전 북-중 양국의 혈맹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북-중의 혈맹 강조를 지나치게 되새길 필요는 없다. 북-중 양국은 그동안 필요에 따라 혈맹을 강조하기도, 무시하기도 해 왔다. 지난해 봄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했다. 당시 양국 수교 60주년 기념행사들은 축소되고 미뤄졌다. 김 위원장의 마오안잉 묘 참배도 아마 올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마오안잉 묘에 참배한 것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참배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북한은 과거에 기대어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고 연평도 도발의 거센 후폭풍을 막아보려 한다. 중국도 미국에 맞설 카드로 북한을 활용하고 중국 내에서도 토대가 무너지는 북한 감싸기에서 명분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진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근거를 멀리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양국 관계의 가장 단단한 기반이라는 ‘함께 피를 흘린’ 6·25전쟁에 대한 평가부터 다르다.

북한 주민은 정작 그들이 말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중국군의 절대적 역할을 알지 못한다. 함께 싸웠다 정도로만 알고 있다. 북한 고등중학교 4학년(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역사’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부대들과 함께 싸웠다”라고만 기재돼 있다고 한다. 중국군 240여만 명이 참전해 18만여 명이 숨진 사실도 없다. 모든 교과서를 통틀어 딱 한 줄뿐이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의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중국군이 김일성 원수의 지휘 아래 북한 인민군 보조로 참전한 줄로만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6·25전쟁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현명한 영도로 승리한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김일성의 핵심 치적인 조국해방전쟁에 중국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은 주체를 강조하는 북한에 굴욕이고 수치”라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이 아무리 양국 혈맹관계를 강조하려 해도 토대는 이처럼 상당히 허물어져 있다.

이헌진 베이징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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