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리스 복지病을 목격하며 한국이 떠올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8일 03시 00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선 고대 문명과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국민적 자부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주 아테네 중심 신타그마 광장 주변에서 경제 회생(回生)을 위한 ‘고통스러운 개혁’에 반발하는 노조 시위와 정치 집회가 연일 열리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정부 계약직 직원들의 파업으로 사흘간 폐쇄돼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일은 적게 하고 복지는 많이 누리는 국민 삶이 파탄 났는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기는 더 어려운 모양이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9%이지만 관광객은 찬밥 신세다. 조상의 유산에만 의존하는 관광산업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재정위기를 맞아 유로 존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3년간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그리스의 모습이다. 그리스 국민도 구제금융을 받은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하지만 한국 국민이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경제 국치(國恥)’라며 이를 악물던 결연함은 없어 보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할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성장세를 이어가던 그리스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선박왕 오나시스’로 상징되던 해운·조선업을 한국 중국 일본에 빼앗기면서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지 오래다. 수입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무역적자가 민간 부채로 이어지고 다시 공공부문으로 이전되면서 온 나라가 빚더미에 짓눌렸다. 나라 곳간은 비었는데 사회복지 지출은 급증하고 있다. 정부예산에서 사회복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5.7%에서 2010년 36.3%로 더 커졌다.

직종별로 155개에 이르던 연금기금을 2008년 13개로 통폐합했지만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 국고로 충당하다가 급기야 이웃나라에서 돈을 빌려 연금을 지급했다. 이것이 유럽으로까지 확산됐던 그리스발(發) 재정위기의 실체다. 남자는 58세, 여자는 55세인 정년퇴직 이후엔 평생 연금으로 생활한다. 이런 노후복지 체계에서 그리스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있다.

그리스 생산연령 인구의 20%는 공공부문에 종사한다. 직종별 임금체계를 보면 공무원을 100%라고 할 경우 공기업은 110%, 민간기업은 70∼80%다. 공기업 직원은 소속 기업의 재정적 이유로 조기 퇴직할 경우 근무연한과 상관없이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받는다. 공공부문 개혁에 엘리트인 중앙은행 직원과 국영TV 기자들이 앞장서 반발하니 개혁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리스 위기는 국민이 일단 과잉복지에 익숙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세계에 일깨워주고 있다. 과잉복지가 세계문명의 요람을 결딴내는 상황을 보며,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가 한국에서도 퍼져가고 있는 현실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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