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지와 정치가 뒤섞이면 재앙이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민주당은 학교 무상급식 공약을 계기로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내걸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서울시의회도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해 ‘보편적 복지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보편적 복지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주는 복지 시스템이다. 전면 무상급식과 빈부 구분 않는 육아수당이 대표적이다. 보편적 복지와 대비되는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그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혜택 받는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며 “복지와 정치가 뒤섞이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무상급식과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과잉복지의 사례로 들어 논란을 불렀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무차별적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자는 의미다. 수많은 복지 수요를 놓아두고 부잣집 아이들의 점심값까지 지원하는 것은 분명 과잉복지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보편적 복지정책을 채택한 유럽 각국의 조세부담률은 40∼50%에 이른다.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올해 19.3%다. 유럽 같은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려면 세금을 2∼2.5배로 늘려야 하는데 조세저항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유럽도 경제위기를 겪으며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보편적 복지에서 U턴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집권한 영국은 재정적자 감소를 위해 연간 4만4000파운드(약 78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육아수당 지급을 2013년부터 중단한다. 전체 가구의 15%이지만 기왕 받던 수당을 받지 못하는 고소득층이 반발해 보수연정의 집권 기반을 흔들고 있다. 한번 준 사탕은 빼앗기 어렵다. 연금개혁을 하려다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프랑스 사례는 한번 시행된 복지정책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발전단계와 글로벌 추세에 비추어 어떤 복지 모델을 선택해야 할지 정부 정치권 국민 모두 냉철함이 요구된다. 한 정당이 선심성 공약을 내놓으면 다른 정당이 질세라 더 통 큰 복지 정책을 내세우기 쉽다. 이런 복지 거품내기 경쟁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라의 곳간이 비고 미래의 먹을거리도 바닥나게 된다.

보편적 복지는 혜택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무임승차자로 만들어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 이런 복지는 경쟁, 효율, 생산을 통해 부(富)를 키우고 축적해야 할 나라를 복지에 중독된 게으름뱅이들의 세상으로 후퇴시킨다. 오늘의 정치인들이 미래 세대의 고통을 담보로 선심 쓰는 모습은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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