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대기업 임직원의 2주 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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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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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휴가도 좋았고 다른 부에서 일한 경험도 좋았습니다.”

에쓰오일 K 부장은 사장의 방침에 따라 올여름 2주 휴가를 다녀왔다. 입사 이후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가진 그는 1주일은 가족과 여행을 다녀오고, 1주일은 혼자 지리산을 훑었다. 직장생활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본 시간이었다고 한다.

에쓰오일은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2주간 다른 사람을 정식 발령한다. K 부장은 총무팀장의 역할을 대신했다. 자신의 업무에 다른 사람 일까지 하느라 무척 바빴지만 그 대신 다른 부서를 잘 이해하게 됐다. 그는 농반진반으로 “다만 그 부서원들을 사귀려고 밥 사고 술 사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쓴 데다 휴가가 길어서도 돈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수베이 사장은 “한국은 그동안 고도 성장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같은 방식으로는 성장이 어려운 것 아니냐”며 재충전을 권한다고 한다.

올 들어 임직원에게 2주 휴가를 의무화하거나 권장하는 대기업들이 많아졌다. SK, 두산, 신세계, GS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만 해도 임원들은 여름에 하루나 이틀 쉴 뿐 1주일 휴가도 다 쓰지 못했다.

최근 젊은 3, 4세 경영자들이 전면에 나서거나 직원들의 창의성이 강조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작년 말 대표이사가 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42)은 “그동안 임원들은 1년에 1주일도 휴가를 안 갔는데 그러다 보니 항상 피곤해보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임원들도 2주 휴가를 가라고 권했다. SK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워크 하드(Work Hard)’를 넘어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워크 스마트(Work Smart)’ 운동과 함께 2주 휴가가 진행되고 있다.

긴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은 휴가를 보낸 방식도 다양했다. 유럽여행이나 오지여행을 했다는 젊은 직원, 그동안 미룬 수술을 받았다는 50대 임원,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처럼 하나의 주제를 정해 탐구했다는 사장 등…. 하지만 여전히 “취지는 좋지만 실제론 2주 휴가를 못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휴가기간이 한국에서만 화제가 되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는 종종 ‘미국인은 왜 유럽인보다 덜 쉬나?’를 놓고 토론이 벌어진다. 근면하기로 소문난 독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이 1353시간, 프랑스는 1457시간인 데 반해 미국은 1798시간이니 미국과 유럽의 차이가 크긴 하다. 한국은 2256시간.

휴가는 개인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이슈다. 경제성장률, 출산율, 여성의 사회참여, 나아가 그 사회의 행복지수와도 연관된다. 경쟁과 성장을 지향하는 사회는 많이 일하고, 공동체와 안정을 중시하는 사회는 많이 논다. 프랑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보다 적지만 프랑스인들은 휴가시간을 절대 안 줄인다. 돈을 덜 벌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알베르토 알레시나 등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과 유럽인의 근로시간 차이를 설명해주는 건 문화가 아니라 제도다. 유럽인이 미국인보다 놀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책의 차이가 근로시간 차이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휴가 이슈가 사실은 ‘정치적 문제(politically charged)’라는 것이다. 수십 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그래서 세계적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한국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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