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대북 인도적 쌀 지원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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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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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을 비롯해 정치권이 연일 정부에 대북 쌀 지원 재개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쌀 지원의 범위는 매년 30만∼40만 t을 지원했던 지난 정부 때처럼 대규모로 그 명분은 인도적 차원인 듯하다. 최근 북한 신의주 일대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 소식과 맞물려 이 같은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지난 정부의 쌀 지원은 인도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된 차관 형태였다. 대북 쌀 지원 방식을 인도적 지원으로 바꾼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규모 식량 지원은 남북관계, 북핵문제와 결부된 대북정책 차원에서 고려돼 왔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물밑에서 이뤄졌던 남북 정상회담 논의에서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대규모 식량 지원도 정상회담의 대가로 제기됐던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아무리 대북 쌀 지원을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하라’고 주장하더라도 쌀 지원은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쌀 지원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인도적 문제를 넘어 대북정책의 변화를 뜻한다는 얘기다.

대북정책의 변화는 기존 정책이 북한의 변화나 비핵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거나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정책 전환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이라는 판단에서 나와야 한다.

그 정책적 판단은 천안함 폭침사건 전후 정부의 대북정책, 미국의 대북제재, 북한의 태도 등 현 정세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쌀 지원이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할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대북 쌀 지원 요구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은 있을지언정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나 고민에서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그런 고민 없이 대북전략과 아무런 상관없는 ‘국내의 남는 쌀 문제 해결’을 내세워 쌀 지원 문제를 꺼내는 것은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번 기회에 북한 비핵화, 북한의 변화, 나아가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떤 대북정책이 필요한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쌀 지원 얘기를 꺼내기 전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현재처럼 제재를 지속해야 할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전환이 필요한지부터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현 제재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6자회담 재개 요구 등 북한이 조만간 취해올 ‘평화공세’에 또다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윤완준 정치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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