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국가대표 미술관’ 허술한 설계공모 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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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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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동쪽 2만7402m² 용지에 약 24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짓는 미술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에 세워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입지로 보나 규모로 보나 우리 예술의 멋과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될 공간이다. 하지만 6일 당선작 발표 기자회견으로 마무리된 설계공모 과정에는 국가대표 미술관 사업다운 치밀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공모는 지난해 12월 113개 팀이 참가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선정된 5개 팀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종 결과 발표 예정 시기는 5월 말이었다. 그런데 미술관 측은 7월 20일에야 설계공모 공고문을 참가자들에게 배포하고 ‘7월 29일 작품 접수를 마감한다’고 알렸다. 6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관 용지 안에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건물을 이전 복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설계 지침을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종친부 건물 복원에 필요한 땅은 약 2000m²다.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애초부터 복원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공모 참가자들이 설계 작업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원 결정이 나오고 나서 부랴부랴 설계 지침을 바꾸고 최종 마감일을 정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행보는 공모 시기와 방법이 합리적이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공모를 시작하면서 미술관이 공지했던 건물 총면적은 3만3000m². 6월 변경된 지침은 여기에 ±20%의 조율을 인정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설계를 수정해야 하는 참가자들에게 10층 높이 오피스빌딩 건물만큼의 공간을 ‘허용 가능한 변수’로 제시한 셈이다.

6일 회견에서 박영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은 “더 중요한 유물이 발굴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황에 따라 추가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했다. 최종 계획안과 설계 주체가 확정됐는데도 건물을 지을 용지의 미래는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미술관 설계공모는 디자인의 독창성보다 참가 설계사무소의 규모나 경험을 중시해온 오랜 관행을 적잖이 극복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당선안을 바탕으로 본 설계에 착수하겠지만 현재의 계획을 어느 정도나 그대로 살릴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당선안의 주제는 ‘셰이플리스니스(shapelessness·不定形)’다. 국내 설계공모에는 당선안과 판이한 형태의 건물이 지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공모 과정에서 나타난 허술함을 보완하지 못한다면 새 미술관도 그 같은 전례의 답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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