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희옥]드디어, 발톱 드러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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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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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드디어 발톱을 보이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은 바로 그 시금석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만든 안보 프레임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규칙 제정자를 자임했다. 그 결과 천안함 사건은 줄곧 중국 변수에 따라 출렁거렸다. 중국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유엔 의장성명에 동의하기까지 정치적 수사만 바꾸었을 뿐,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틀을 고집하여 ‘이번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한미 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천안함 사건 中변수에 줄곧 출렁

그 결과 사과와 책임자 처벌, 국제 공조하의 대북제재라는 우리 정부의 호언과는 달리 중국의 벽에 막혀 유엔 의장성명은 공격 주체를 명시하지 못했고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을 ‘유의한다(take note)’고도 했다. 우리 정부가 의장성명에 담긴 행간을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북한도 이를 외교적 성과라고 자평한 것에 비추어 보면 그 성과는 빈곤했다. 결국 꽃다운 장병들이 희생된 천안함 사건은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몸값을 높여주고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사과 없이 6자회담 없다’는 우리의 출구전략도 무색해져 버렸다.

중국의 역할과 태도를 우리 식대로 읽었던 것도 이런 결과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미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질서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한반도의 판을 새롭게 짜 왔다. 이는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접근할 때부터 예고됐다. 이런 점에서 대북 무력시위의 하나로 기획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중국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됐고, ‘한미 훈련을 중국과 사전에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앞으로 한중 관계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는 희망적 예단에 빠진 채 중국이 이동하는 길목을 발 빠르게 지키는 데 실패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한미동맹의 우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프리즘으로 중국을 보는 것은 국내 보수층에는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기로에 놓인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맞춤형 전략은 아니었던 셈이다.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는 인간들의 집단 간 관계가 영구평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데에서 출발하고 인간 본성에 기초한 국제정치의 본질을 권력정치로 간주한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도 현실주의에 기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접근할 때에는 ‘바람직한 것을 해야만 하는 일’에 관여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태도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중국 부상이 만든 한반도의 촘촘한 그물망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과 공존전략 마련 시급

천안함 사건은 중국과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 줬다. 대나무가 곧게 자라는 것은 매듭을 만들며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중 간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매듭으로 만들어 양국 관계의 규범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양국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고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전략을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을 불편하게 보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양의 현실주의는 인간의 삶이란 제약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중국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중국의 위협을 넘어 대담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동맹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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