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금동근]TV프로 폐지될땐 아무말 없던 사람들이 이제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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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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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온갖 ‘쓰레기 예능물’은 돈을 쏟아 부어 제작하면서 일주일 통틀어 유일하게 유익한 프로는 폐지해버리는군요.”

KBS1의 ‘TV, 책을 말하다’가 작년 1월 초 폐지됐을 때 시청자 게시판에 올랐던 글들이다. 시청자들은 4월까지 400건이 넘는 글을 올리며 항의했지만 KBS는 무반응이었고 공론화되지도 않았다. 2%에 불과한 시청률 때문이었다. 출판계와 극소수 열혈 시청자를 제외하곤 이 프로그램의 폐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상당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랬던 ‘시청률 2%짜리’ 프로그램이 갑자기 핫이슈가 됐다. “높으신 분께서 진중권 나왔다고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버리라고 하셨다더군요”라는 진중권 씨의 주장 때문이다. 진 씨의 발언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폐지에 대해 출연진의 성향 때문이네, 외압이 있었네,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있다.

여기에 한 누리꾼이 ‘진중권은 진행자가 아니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쩌다 한 번 나오는 게스트였는데 무슨 영향력이 있다고 프로그램까지 폐지했겠느냐”고 지적했다. KBS도 12일 “프로그램 존폐 여부는 특정 경영진의 특정 출연진에 대한 선호 여부로 결정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논란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누리꾼은 “평소에 저 프로 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폐지됐다고 하니까 정치적 이념 싸움으로 엮는 건 뭐냐”고 일침을 가했다. 이 누리꾼의 발언은 ‘TV, 책을 말하다’를 아꼈던 ‘2% 시청자’의 심정을 대변한다. 이들은 KBS가 “시청률이 2%를 밑돌아 폐지했다”는 요지로 내놓은 해명에 더욱 주목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가 상업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독서 프로그램도 시청률을 기준으로 존폐를 결정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KBS는 ‘TV, 책을 말하다’를 폐지한 지 넉 달 뒤 ‘책 읽는 밤’이라는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항의에 못 이겨 새로운 책 프로그램을 만든 건지, 진작 새 프로그램 계획이 있었던 건지 확인할 길은 없다.

‘TV, 책을 말하다’의 시청자들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나마 책 프로그램이 유지돼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이들로선 이번 논란을 일으킨 진 씨가 고마울지도 모른다. KBS가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앞으로는 적절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책 프로그램을 없애는 데 부담을 느끼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주 ‘책 읽는 밤’의 시청률은 1.0%였다.

금동근 문화부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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