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 진정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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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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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일본 대 네덜란드 경기가 열린 지난주 토요일.

주말을 맞아 일본에 간 나는 도쿄 근교 도시에 있었다. 경기는 오후 8시 반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내가 간 식당엔 TV가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텅 비겠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9시 반이 넘도록 식당엔 손님들이 많았다. ‘자국 팀이 월드컵 본선 경기를 하는데, 어떻게 여기 앉아 있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TV가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고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쪽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에는 아랑곳 않고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이 0 대 1로 패한 뒤. 자국이 패배했음에도 응원하던 사람들은 한 차례 박수를 치고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거나 카페를 나갔다.

아무리 일본인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해도 너무 쿨한 반응이었다. 바로 이틀 전, 서울에서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 때 국가적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던 경험 때문인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월드컵 축구로 온 나라가,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광경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가.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 소식으로 격정의 새벽을 지낸 23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도발 규탄 및 대응조치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46명의 군인과 전함을 잃은 피격 당사국에서, 사건이 난 지 석 달 만에, 그것도 80여 개국과 국제기구에서 이 사건을 규탄한 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동의 없이 날치기 비슷하게 처리된 결의안이었다.

이 뉴스를 접한 순간 묘하게도 월드컵을 관전하던 일본인들이 떠올랐다. 월드컵으로 혼연일체가 되는 한국인과는 달리 쿨한 반응을 보였던 그들. 만일 자국 영해에서 전함이 피격돼 침몰하고 군인 46명이 수장당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국이 주도한 사건 조사결과를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시민단체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까지 의혹을 제기하는 편지를 보냈을까.

월드컵 응집력은 한국보다 낮을지언정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에 관한 한 일본은 한목소리를 내왔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경하고, 적어도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북-일 수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공감대가 일본 내에 형성돼 있다. 그런 일본을 떠올리며 혹시 우리가 축제 때 외치는 ‘대∼한민국!’보다 아군 전함이 폭침당한 위기상황에 외쳐야 할 ‘대한민국’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잠시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에서 지폐에까지 등장하는 애국자로 추앙받는다. 재미있는 일은 이토의 장례식 때 그의 죽음을 부러워하는 원로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종각의 ‘이토 히로부미’)

“방 안 다다미 위에서가 아니라 만주 벌판에서 자객의 손에 쓰러진 것이 영광스러운 죽음이다”(오쿠마 시게노부), “실로 가장 좋은 죽을 장소를 얻었다”(노기 마레스케), “나는 그의 마지막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야마가타 아리토모).

국가에 몸을 바치고자 하는 이런 정신이 한국엔 일제의 악몽으로 이어졌지만, 오늘의 일본을 이룬 바탕이다. 이 아침,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데 헌신한 분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으면 한다. 오늘은 6·25전쟁 발발 60년째 되는 날이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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