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수곤]불편한 다리로도 걷기 좋은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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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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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로 시작된 걷기 문화의 유행은 남도길과 둘레길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걷기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여유를 찾는 문화 흐름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걷기는 어디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실천이 가능하다.

걷기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질병이 생겼거나 회복단계에 있는 환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대표적이다. 손과 발의 관절 변형으로 걷기 힘든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도 마찬가지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우리나라에서 1% 정도가 앓는 질환으로 정확한 인식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환자의 70∼80%가 여성이고 퇴행 관절염과 달리 육아와 집안일, 회사일로 바쁜 20, 30대 젊은 여성 환자의 비율이 높다. 증상이 진행된 후에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이들은 보통 증상이 발생한 지 1년 이내 관절 파괴가 시작돼 방치할 경우 영구적인 장애까지 발생할 수 있다. 걷기와 같은 가벼운 운동과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통한 관절 변형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환경적 여건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환자에게 걷기 좋은 길이 개발되지 않아서다. 집 밖으로 나와도 경사가 심한 길이나 계단, 턱이 높은 길, 도심 속 콘크리트길에 둘러싸여 오히려 관절에 부담을 주기 일쑤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한류마티스학회는 전국 5개 도시에 류머티스 관절염 환우가 걷기 좋은 길을 선정했다. 서울 도심 속 호젓한 정동길을 비롯해 제주 올레길, 대전의 황톳길, 광주의 천변길, 부산의 동백섬 길이다. 계단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며 주변 환경도 아름답다. 몸이 불편해 평소 외출을 못하고 움츠렸던 환자가 가족이나 의료진과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걷기의 중요성과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제주의 올레길처럼 풍광이 빼어나지 않아도 좋다. 서울 정동길 같은 도심 속의 호젓한 길이나 작은 공원처럼 길지 않지만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함께 편히 걷는 길도 환자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퉈 선정하는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길’에 몸이 불편한 환자가 함께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지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제주 올레길로부터 시작된 걷기문화가 전국적으로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걷기의 장점 덕분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길에 몸이 불편한 환자나 장애인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 걷기 운동이 필요한 환자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편하고 안전한 길을 만드는 데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때다.

이수곤 대한류마티스학회 이사장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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