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기업 ‘자만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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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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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의 매출액을 비교할 수 있는 첫해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 4년째이던 1965년이다. 그해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1991년에도 100위 안에 남은 회사는 16개였다. 84개사는 순위가 훨씬 낮아지거나 회사 문을 닫았다. 공병호 박사는 1993년 펴낸 ‘한국기업 흥망사’에서 “한때의 성공에 취하여 자만하거나 무작정 사업영역을 확장한 기업은 몰락했다”고 분석했다.

1965년에도, 1991년에도 100대 기업에 포함된 16개사 중에도 조흥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이 무너졌다. 현대건설 기아자동차 등은 회사이름은 남았지만 대주주가 바뀌었다.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100위권’을 지킨 기업은 LG전자 제일모직 대림산업 등 10개도 안 된다. ‘부자(富者)가 3대 가기 힘들다’는 속담은 오랜 경험칙인 셈이다.

‘승자(勝者)의 덫’에 빠져 추락한 해외기업도 많다. ‘워크맨 신화(神話)’를 남긴 일본 소니는 1990년 미국 코카콜라에 이어 세계 2위의 기업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다. 그러나 본업(本業)인 하드웨어 부문을 경시하고 미국 영화사를 비싸게 사들이는 등 겉멋을 내면서 흔들렸다. 브랜드 가치는 2005년부터 삼성전자보다 낮아졌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초우량기업 순위에서 지난해 3위이던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360위로 급전직하했다. 188위인 현대자동차보다도 훨씬 낮다. 도요타가 흔들린 결정적 원인도 ‘우리가 최고’라는 자만이었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포드나,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까지 나오게 한 GM의 굴욕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요즘 기업과 국가의 경제서열에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은 중국 인도 등과 함께 ‘승자 그룹’에 속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대기업들은 잇달아 승전보를 전해왔다. 기업실적 호전으로 주가는 1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세금폭탄’으로도 잡지 못했던 부동산 값은 건설경기 긴급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만큼 하향안정세다. 무지와 무능, 독선과 위선이라는 ‘국정 실패 4대 종합세트’의 기억이 선명한 노무현 정권 시절 세계 평균을 밑돌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다시 세계성장률을 웃돌기 시작했다.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교훈을 역사는 일깨워준다. 15세기부터 승승장구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네덜란드와 영국에 밀렸다. 한때는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쟁력을 갉아먹은 낡은 관념과, 쌓아올린 업적에 대한 집착 및 자만심 때문이었다. 17세기 스페인은 전략과 조직이 무기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다. 포르투갈 군대는 ‘야고보 성인(聖人)의 이름으로, 진격 앞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무질서하게 공격하는 전술밖에 시행할 줄 몰랐다. (그렉 클라이즈데일, ‘부의 이동’)

한국은 1990년대 중반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흥청거리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요즘 세계가 주목하는 삼성도 무모한 자동차산업 진출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금물이다. 매일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세렝게티 초원의 생리를 닮은 기업 및 국가 경쟁에서는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머리와 손발을 움직이면서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만을 뜻하는 ‘휴브리스’를 파멸로 가는 지름길로 봤다. 휴브리스에 빠지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찾아온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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