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史를 ‘다수결 裁判’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이영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위원회의 결정은 100% 진실이나 정의라기보다는 그 결정이 내려질 당시 위원들 다수의 판단일 뿐”이라면서 과거의 결정 중에는 지금 결정하면 (결과가) 달라질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투표를 하는데 결국 투표에 의한 진실, 다수결에 의한 진실일 뿐”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위 위원이 됐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정치권력이 임명하는 과거사위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과거사의 실체적 진실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과거사위는 우리 근현대사의 암울했던 시기에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을 다시 들추어 진실을 규명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1997년 이후 과거사 청산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지금까지 18개 위원회가 발족했다. 당초 과거사 청산은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진 학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높았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거의 모든 과거사위를 대통령 직속 또는 정부 산하 위원회로 발족시켰다. 위원회 구성원들도 상당수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2007년 1월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9개 과거사위 위원과 직원 372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른바 진보 성향의 단체에 가입했거나 관련 활동을 한 경력자였고, 보수 성향 분류자는 10%가 채 안 됐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구성원이 다수인 상태에서 다수결로 진실을 가린다면 실제적 진실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임명한 위원들이 역사적 진실을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과학적 진실을 여론조사에 부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과거사위 결정 중에는 건전한 상식과 배치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교내 분쟁 끝에 경찰관 7명을 사망케 한 부산 동의대 사건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같은 반국가단체 활동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 의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 발표도 마찬가지이다.

공정성 논란을 빚고 있는 과거사위의 결정들은 행정적 사법적으로 오류를 시정해 나가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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