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교실의 피그말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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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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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 박사와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레노어 제이콥슨 박사는 40여 년 전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했다. 실험 대상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빈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던 초등학교의 교사들이었다. 학년 초 두 사람은 교사들에게 다른 학생들에 비해 두뇌가 명석한 학생들의 이름을 알려줬다. 앞으로 이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될 것이라는 귀띔도 해줬다. 하지만 실제 이 학생들은 무작위로 선발돼 다른 학생들보다 지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모든 학생에게는 실험 자체를 철저히 비밀로 했다.

그런데 학년 말 나타난 결과는 놀라웠다. 교사들에게 이름을 알려줬던 학생들의 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지능지수(IQ)가 24점이나 오른 학생도 있었다.

무엇이 학생들의 차이를 가져온 것일까.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답은 명쾌했다. 교사였다. 교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학년 초 이름을 전달받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해당 학생들의 학교생활에서의 변화로 이어졌고 성적 향상은 그 부산물이었다.

두 사람은 이 같은 결과를 ‘피그말리온 효과’라 불렀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로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을 여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빌었다. 그의 사랑에 감복한 아프로디테는 결국 그의 소원을 들어줬다. 신화를 빌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교사는 마음으로 아이를 조각하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이다”고 실험 결과를 요약했다.

우리 세대를 포함한 이전 세대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피그말리온이 적어도 한 분씩은 있다. 초등학교 시절이든, 중학교 시절이든, 고등학교 시절이든 평균 이하의 둔재(鈍才)였던 우리에게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은사(恩師)’들이다. 교사가 평범한 조각가라면 은사는 피그말리온이다.

하지만 요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피그말리온이 있을까. 몇 년 전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펴낸 ‘한국 초등학생의 생활 및 문화실태 분석연구’에 따르면 고민을 의논하는 대상에서 교사는 학원·과외강사보다 뒤졌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방송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고교생들이 학습상담을 하는 대상에서 학원·과외강사가 1위를 차지한 반면 교사는 최하위였다.

“졸업 후 찾아오는 제자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늘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원강사들은 학생들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국정연설에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교육을 되살리는 교육 개혁에는 교사들의 분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사교육에 도둑맞은 은사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열악한 교육환경, 교사를 고발하는 영악한 세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음식 맛이 나쁘다고 불평하는 손님에게 ‘당신의 입맛이 잘못된 것’이라고 타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개월 뒤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교원평가제가 실시된다. 이 제도가 아이들에게 잊혀가고 있는 은사를 되찾아주는 데 지렛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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