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정원 몰아내고 권력 비호 인물 앉히려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국내 최대 민간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 회장 최종후보로 선출됐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그제 후보에서 갑자기 물러났다. 강 행장을 회장으로 공식 선출하기 위해 7일 열기로 했던 KB금융 임시 주주총회도 취소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KB금융 회장 후보를 확정하는 추천위원회 개회 전에 강 행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강 행장이 사퇴하지 않고 사외이사들이 후보 추천을 강행하자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강 후보를 추천한 사외이사의 비리 혐의를 파고들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후보가 외압(外壓) 때문에 사퇴했다면 그 외압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고 금융 선진화와도 거리가 멀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KB금융을 조사한 데 대해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조사라면 왜 개인 비리만 집중적으로 파헤쳤는가. 금융당국이 강 후보를 사퇴시키고 대신 앉히려는 KB금융 회장 후보는 권력 실세(實勢)와 가까운 인물이거나 금융관료 출신일 것이라는 관측이 떠돈다. ‘강정원 몰아내기’가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 개회 전에 예비후보에서 사퇴했던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이나 김병기 전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을 KB금융 회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은행업무 경험이 없다. 더구나 이 사장은 현직 자산관리공사 사장으로 본분을 다해야 할 사람이다. 그가 KB금융 회장 공모에 응모했을 때, 그가 대통령 측근 실세와 인척이란 사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이미 올랐다.

은행 경영진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은행 경영진과 결탁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있었다면 금융당국이 진즉 제재에 나섰어야 했다. 당국자 자신들이 업무에 태만했던 책임을 민간 금융회사에 떠넘기는 구태도 역겹다.

차제에 은행 경영진을 선출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모피아(구 재무부 출신 관료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나 금융권의 특정인맥이 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을 제치고 행장,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관행부터 사라져야 한다. 강정원 씨를 비호하려는 게 아니다. 금융당국이 은행장을 멋대로 바꾸고 은행 임원들을 하인처럼 부리는 관치금융이 금융시장의 인적 경쟁력을 떨어뜨린 주요인의 하나임을 청와대도 알아야 한다. 정부가 ‘금융 선진화’를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금융권력 독식’을 추구하는 한 금융 선진화는 요원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