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영길]무너진 국방기획관리제도 복원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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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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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군 무기획득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시의적절한 결단이라 생각하며 환영하는 바이다. 한편으로는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음을 밝히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조치가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 혼탁한 상황도 바로 전 정권에서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미명하에 ‘자기식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 정권은 양식 있는 전문가의 반대를 묵살하고 짜인 각본에 따라 방위사업청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편성하여 국방부 합참 및 각 군 본부가 분담하던 획득 정책 및 계획 기능, 예산 편성 기능, 무기체계 시험평가와 채택 기능, 원가 산정 및 품질보증 기능, 심지어 연구개발 기능까지 통합해서 무소불위의 초대형 기구를 탄생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정부조직법상의 체계나 국방기획관리의 시스템 이론에도 맞지 않는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양병 시스템의 무력화인 동시에 정치권력에 의한 군 무기 구매 사업의 장악이라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 모든 권한과 기능을 한곳에 집중시켰을 때 의사결정의 폐쇄성과 독단성이 증대될 수밖에 없음은 상식에 속한다. 드러난 개별 비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근원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1970년대 초 ‘율곡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군 전력 증강 계획은 대통령이 직접 통제하고 합참의 소수 전문가집단이 계획과 예산 배분을 관장하는 단순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군사전략과 군사력 구조에 대한 종합적이고 기획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 엘리트의 직관에만 의존하면 편견에 빠지거나 시스템적 비리에 말려들 소지가 크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했다.

약 2년간의 연구기간을 거쳐 국방기획관리제도라는 새로운 틀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업무 체계를 재설계했다. 군의 기획 기능을 강화하여 소요와 계획을 목표지향적으로 통제하고, 국방부 합참 및 각 군 본부에 권한과 기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견제와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방지하고, 일선 실무자급에서부터 토의와 합의를 거쳐 대안을 발전시키는 상향식 의사결정 체계를 채택하여 상급 부서의 독선이나 외부의 압력을 배제한다는 게 뼈대였다. 또 모든 소요는 예산집행 3년 전, 계획은 2년 전에 확정하여 군 수뇌부가 임기 중에 신규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새로운 국방기획관리제도가 등장하면서 군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투준비와 부대관리에만 매달리던 군이 이제는 군사력 건설이라는 군의 미래를 설계하는 업무에 함께 참여하고 고민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간부의 논리적인 사고와 전문성을 계발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는 무형적인 군의 변신과 발전을 의미한다.

물론 비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산 집행과 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적 비리였다. 의사 결정의 비리나 시스템의 비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 정권은 개혁이라는 구실로 국방기획관리의 시스템 전체를 파괴해버렸다. 국방개혁은 궁극적으로 국방력을 강화한다는 합목적성 위에서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면밀한 분석과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혁 담당자의 사명의식과 도덕적 진실성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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