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선미]‘영세상인 프렌들리’ 정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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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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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는 서울 강북의 한 동네엔 40대 후반의 남자 사장이 운영하는 DVD 대여점이 있다. ‘80학번’인 그는 10년 전 대기업을 관두고 이곳에 음반 가게를 차렸다. 16m²(약 5평) 남짓한 매장에 빼곡히 CD를 갖추고 ‘행복한 사장님’을 꿈꾸던 시간도 잠시. 사람들은 음반을 사는 대신 인터넷에 떠다니는 공짜 음악을 내려받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던 그는 CD를 걷어내고 비디오테이프를 새로 들여놓았다.

시련은 계속됐다. 기술의 진보로 DVD가 비디오테이프를 빠르게 대체했다. 그는 다시 DVD로 몽땅 바꿨다. 하지만 공짜 애호가들은 영화도 거침없이 내려받았다. 지난해 그는 매장 한쪽에 홍삼 제품을 진열해 팔더니, 급기야는 최근 ‘폭탄 꼬치와 DVD’란 간판을 새로 내걸었다. 그의 아내까지 출근해 밤낮으로 꼬치를 굽는다. 홍삼과 DVD의 동거가 뜬금없었다면, 꼬치와 DVD의 한 살림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는 말했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의지로 불법 콘텐츠 다운로드를 막았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겠죠. 중소 상인들이 시대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이 작은 가게 안에서 정보를 얻기란 너무나 힘겹습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서비스업 통계조사’에서 국내 서비스업 매출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었다. 하지만 음반·비디오 대여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14.9% 줄었다. 유아용품 도·소매업은 출산 감소로, 동네 슈퍼는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영향으로 고전했다. 같은 동네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던 40대 초반 남자 사장도 “인터넷의 가격 파괴를 당해낼 수 없다”며 올 초 덜컥 어묵 가게로 업종을 바꾸더니 얼마 전 가게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지만 소소한 희망은 남아 있다. 한 줄에 1000원짜리 김밥을 파는 이 동네 김밥집은 석 달 전 카페풍 인테리어로 새롭게 단장해 인근 대기업 계열 빵집으로 향하던 고객층까지 새로 잡았다. ‘즐거운 마트’란 이름의 동네 슈퍼는 매일 아침 주요 신선식품 가격 정보를 고객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준다.

올해 유난히 고생한 국내 중소 상인들이 새해엔 활짝 어깨를 폈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그들에게 자생력을 키우라는 말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지는 업종’에 생계를 걸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사회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서민들이 진정 원하는 ‘서민 프렌들리’다.

김선미 산업부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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