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일자리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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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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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던 ‘대란(大亂)’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실업자 100만 명 시대가 현실로 닥칠 것이라는 공포는 적어도 2009년엔 기우(杞憂)로 판명됐다. 6개월짜리 임시직이면 어떻고, 대학생 아르바이트 수준의 저임금이면 어떤가.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라는 대통령의 채근에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인턴 채용을 늘렸다.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은 꽁꽁 얼어붙었던 취업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희망근로 프로젝트,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로 40만 명의 일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대부분 달성했다. 많은 돈을 한꺼번에 풀다보면 허튼 데로 새기도 하지만 일자리의 중요성을 알기에 국민도 관대했다.

꽃피는 봄엔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가 93만3000명이라는 통계가 나오자 “내가 허언을 했다. 예상이 빗나가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속 줄어들기만 하던 취업자 수가 추경예산이 풀린 6월엔 4000명 증가로 돌아섰다. ‘반짝 효과’라고는 해도 희망근로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올해 재정을 투입해 창출한 일자리는 80만 개라고 한다. 이만큼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4조7000억 원이 들었다. 단순계산으로 일자리 하나에 587만5000원이 들어간 셈이다.

청년인턴 제도가 실업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미룬 것에 불과할 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은 절반만 옳다. 인턴은 사회 진출의 문턱에서 좌절한 젊은 영혼에게 사회와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돈보다 값진 소중한 경험이다. 저소득층 대상의 희망근로가 시간 때우기로 흐르고 실제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하루 8시간을 일해 버는 3만3000원의 일당은 경기침체의 혹한을 견뎌내는 데 든든한 양식이 될 수 있다.

형편이 어려운 우리의 이웃들이 올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일하는 기쁨을 느끼고 넉넉하진 않더라도 생계를 꾸려 갈 수 있게 해준 곳은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다. 작년 12월 13일 국회가 비록 법정기한은 어겼어도 예년보다 빨리 2009년 예산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면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정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정치권이 끝내 올해 추경예산의 발목을 잡았다면 경기 진작을 위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린 정부의 실행력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밥값도 못한다’는 비아냥에 익숙한 국회가 실은 일자리 대란을 막은 무대 뒤의 숨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한국 경제가 5%의 성장률을 올린다면 이론상 연간 2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년에 3조5000억 원의 일자리 예산 중 상당부분을 상반기에 쏟아 붓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예산안이 올해 안에 통과되지 않아 준(準)예산을 짜야 하는 상황이 되면 모든 게 공염불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일자리든 생계든 복지든 정부 지출에 의존해 생활하는 계층은 경제적 약자인 서민이다. 국회가 민생 안정의 일등공신이라는 찬사는 듣지 못할망정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장면만은 보고 싶지 않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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