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대통령의 사과 진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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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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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최고의 국민 감동 서비스여야 한다. 앞으로 정부의 역할 중 중요한 부분은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이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탄생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국민 감동이 부족했다. 열심히 일한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국민에게 비친 대통령의 이미지는 ‘독선적인 사장님’ 이미지였다. 그래서 지지율이 낮았다. 높은 분이 결정했으니 따라오라는 식은 이 시대에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기업은 그렇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는 그렇지 않다. 국민을 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과 대화, 더 많은 감동 필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감동이 필요하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감동이 부족했다. 제목부터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대통령과의 대화’였고, 대통령의 말씀을 묵묵히 듣는 자리가 되었다. 국민은 없고 대통령만 있던 두 시간이었다. 대통령은 할 말을 다 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좀 허탈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솔직하게 사과한 것은 진솔했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 임기 중에 옮겨가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 둘 수도 있지만, 내가 정치적으로 편하자고 내일 국가가 불편한 일을 할 수는 없다”, “저 하나 불편하고 욕먹고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겠다”고 했다. 입장차가 있더라도 이 정도 용기 있는 진솔한 발언은 높이 살 만했다. 대통령이 죄송하다는 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사과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호소는 설득력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이 감동을 주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할 때다.

세종시를 ‘없던 일’로 한다는 건 효율성과 실리의 문제다. 반면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건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의 문제다. 실리와 명분의 싸움에서는 큰 차원에서 대의명분을 이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과가 진솔할수록,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읍소할수록, 토론에서 대통령이 깨질수록 설득력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있었던 약간의 감동은 이것으로 끝나버렸다. 그 뒤 내용은 교장선생님의 훈화 같았다. 재반박이나 반론, 방청객의 도발적인 질문이 없는 ‘대화’는 ‘독백’에 가까웠다. 짜여진 각본대로 묵묵히 진행된다는 것이 너무 표시 났다. 국민은 그저 질문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역할을 맡았다. 청와대는 방송 이전에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방송 도중에 대통령이 피하고 싶은 질문은 아예 나오지를 않았다.

공감대 만들어야 설득도 한다

4대강 문제를 설명하면서는 수질을 감시하는 물고기 로봇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논란의 핵심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뜬금없었다. 연예인 세 명이 나와서 “가끔 요리를 하느냐” “내복을 입느냐” 등의 질문을 할 때는 예능프로그램 ‘세바퀴’를 보는 것 같았다. 세종시와 4대강처럼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현안에 대해 정리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한가한 방송이었다.

이 대통령은 일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정책만 밀어붙이지 말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에 정면돌파를 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공법을 써야 한다. 하지만 정공법이라며 교장선생님이 아침조회 하듯 가르치려고 해서는 감동도 없고 공감대 형성도 안 된다. 대중은 지도하고 훈계할 대상이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할 대상이다. 공감할 수 없는 일방적 메시지는 독백일 뿐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성공한 정부가 되기 어렵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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