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복수노조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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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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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사관계 지형을 바꿔 놓을 초특급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다.

기업들은 대체로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한다. 1987년 노동운동의 대폭발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다져온 노사관계가 일시에 흐트러지면서 노사갈등과 파업이 증가하고 노무관리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삼성과 포스코를 주요 대상으로 지목했다. 양 노총은 글로벌 대기업이면서 노조가 없거나 활동이 미약한 두 회사를 조직 확장 경쟁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삼성과 포스코는 모의 임금·단체협상을 실시해보는 등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찌감치 복수노조를 도입한 선진국들도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비싼 대가를 치렀다. 세계적인 항공사였던 미국의 ‘팬 아메리칸 항공’은 경영난 속에서도 5개 노조가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등을 놓고 제각기 경쟁하다 결국 1991년 말 파산했다. ‘재규어’로 유명했던 영국 자동차 회사 ‘브리티시 레이랜드’ 역시 17개나 되는 노조가 노-노 갈등과 노사분규를 일삼다 1992년 도산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는 1950년대 무려 32개의 노조가 난립해 혼란을 겪다가 20년 가까이 지난 1968년에야 노조가 단일화됐다. 1970, 80년대 잦은 파업으로 유명했던 ‘영국병’의 근원이 복수노조라거나, 가장 최근(2000년) 복수노조를 도입한 인도네시아가 제도 시행 후 파업이 두 배로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실 양 노총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를 대고 있지만 복수노조를 도입하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제3, 제4의 노동자 단체가 생기거나 군소 노조들이 난립할 경우 두 노총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수노조와 연결돼 있는 ‘사용자에 의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다. 산별 노조 체제인 선진국과 달리 사실상 기업단위 노조가 많은 한국에서는 전임자 임금을 줄 수 없는 노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제화되면 중소기업 등에서는 노조 활동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일치했기 때문에 한국은 법을 만들고도 13년 동안 시행을 미뤄왔다. 1997년 ‘노동조합과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에 두 가지가 들어갔으나 노사 모두 도입을 꺼려 ‘부칙 개정’ 등을 통해 유예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는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수차례 복수노조 허용을 독촉 받은 데다 내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하고 선진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면 노동탄압처럼 비치는 복수노조 금지를 풀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노사정 6자 대표자 회의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노사 양쪽에 치명적인 조항들이 교섭 창구 합리화나 영세 노조 보호 같은 보완책 없이 시행되지 않도록 국회의원과 국민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완이 이뤄진다 해도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우리 사회는 상당 기간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 “근로자가 행복해야 기업도 잘된다”는 상생의 지혜가 절실하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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