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석훈]태평한 국회, 절박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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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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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심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올해는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먼저 전반적인 예산기조의 문제이다. 우리 경제는 최근 세계 경제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자랑하지만 이면에는 적자재정과 이에 따른 국가 부채의 급증이라는 심각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와 통일에의 대비 필요성, 외부 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완전개방경제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재정건전성은 한국 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

292조원 심의 2주도 안 남았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내년에도 마지막 보루를 갉아 먹으면서 정부 재정으로 경제성장률을 사는 정책을 지속해야 하는지, 그리고 재정으로 경제성장률을 산다면 얼마만큼의 돈을 쓸지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우면서 중요한 문제이다.

감세문제도 중요한 이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감세정책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이는 세출의 합리화 또는 축소 조정이라는 정책의 병행을 전제로 했다. 출범 초기와는 반대로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세출이 오히려 급격히 증가했다. 세출분야의 축소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팽창한 상태에서 큰 폭의 적자 재정을 감수하면서 감세를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토론과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 여론이 분열되는 대형 국책사업, 그중에서 4대강 사업도 중요한 이슈이다. 4대강 사업이 다른 사업보다 국가적 우선순위가 있는지, 4대강에서 동시에 사업을 실시하는 방안과 사업성과를 보아가면서 순차적으로 실시하는 방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이렇게 큰 이슈 이외에도 외교통일, 연구개발, 건강복지 분야의 예산을 상대적으로 대폭 늘린 대신 산업 및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의 예산을 10% 이상 삭감하는 자원 배분안이 적절한지도 엄격하게 심의할 필요가 있다. 세부적인 항목에서 불요불급한 분야에 예산이 배정된 경우는 없는지, 사업성과가 극히 미미한 분야에 관성적으로 예산이 배분된 경우는 없는지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심도 있게 검토할 사항이 엄청나게 많은데 예산안 통과의 법정기일인 12월 2일까지는 2주도 남지 않았다. 292조 원에 이르는 예산을 남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라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처럼 세밀하고 엄격하게 살펴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2주일이다. 휴일을 반납하고 밤을 새워가며 심의하여도 주요 항목조차 제대로 심의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족한 기간이다. 국민은, 납세자는 내년도에 정부가 국민이 피땀 흘려 번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세금으로 가져갈지, 가져간 내 돈은 어떻게 쓸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본다.

기한내 처리, 서민 생존걸린 문제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움직여야 할 국회의 모습은 납세자의 이런 절박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세월이고, 올해도 예산이 법정기일 내에 통과되기가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통상적으로 그래왔듯이 예산안 처리를 볼모 삼아 정파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미가 역력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예산안의 내용을 대충 심의한 채 정치적인 타협으로 졸속 처리하는 구습을 반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는 졸속 처리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올해는 예산안의 법정기일 내 처리가 더욱 중요하다. 국회의원이야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겠지만 정부 재정지출에 목을 매는 저소득층에게 예산안의 법정기일 내 처리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모든 정치적 대결보다 예산안 심의를 우선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유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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