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범신]부끄럽다, 이주외국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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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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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이었던가. 전철을 향해 청년이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스리랑카에서 온 청년이라 했다. 이주노동자제도를 고용허가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강제출국이 두려워 목숨을 버린 것이었다. 가슴이 아프고 부끄러웠다. 내가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았다.

나는 다음 날 청년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의 병원을 찾아갔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상하고 나와서도 부끄러움은 다 가시지 않았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빠른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이 한순간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 일로 해서 이주노동자의 ‘성공회 83일 농성’을 모티브로 삼아 소설 ‘나마스테’를 썼다. 주인공인 네팔 청년이 분신자살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 배타성과 야만성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가 소설을 쓰는 동안 계속 나를 사로잡았다.

고백하건대, 나도 이주노동자였다. 당신은 어떤가. 스무 살 시절, 좀 더 잘살기 위해 서울행 열차를 타고 상경할 때 어머니는 “서울 사람들은 눈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공포심에 시달리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각오로 상경했다. 절대빈곤의 시절이라서 더 잘살려면 상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를 어찌 이주노동자라고 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뜨거운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 뼈를 묻었고, 또 다른 우리는 남미 베트남 아랍권에서 땀과 눈물을 지불하고 달러를 벌어들였다. 더 잘살고 싶은 꿈은 인류의 보편적 꿈이니 부끄러울 것 없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났을 때 백인사회가 저들의 치부를 교묘히 감추려고 한인을 매도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분노했던 것도 잘살고 싶은 꿈의 보편적 당위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특히 동남아나 제3세계인에 대한 야만적인 배타성은 ‘나마스테’를 쓰던 5년여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체류 외국인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점만이 다를 뿐이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유학생이 급증했고 국제결혼이 크게 늘어 외국인 신부가 3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봤다.

우리의 인식은 어떤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조사한 바, 외국문화 개방도에서 올해 조사대상 57개국 중 56위를 했다는 기록은 여전히 편견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외국인 중에서도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유색인종과 관련된 비인간적 사건이 끊이지 않는 현상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전통에 따른 혈통주의로조차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피부색깔로 줄 세울 수 없고 문화엔 서열이 없다는 게 세계화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상식이다. 그러나 개발 이데올로기가 만든 경제제일주의는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습관을 주입시켰다. 제3세계 사람에게 유난히 야박하게 구는 심리의 밑바닥엔 모든 생명값이나 문화값조차 재빨리 수직으로 서열화하는 천박한 후천적 습관이 작용한다. 가난했던 시절의 콤플렉스, 가진 자의 우쭐함에 계속 사로잡혀 산다면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게 뻔하다. 얼마 전, 18년이나 우리 땅에 머물던 네팔인 ‘미누’가, 내 생각으로는 이미 한국인이 되고 만 그가, 수많은 사람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추방될 때 남긴 말이 생생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내가 한국에서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사람입니까. 한국이 너무 슬퍼요.”

요컨대, 그들을 위해 관용으로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지 않으면 우리도 잘살 수 없으므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므로.

박범신 작가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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