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희상]국방에 박힌 ‘대못 뽑기’ 서둘러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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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20개월, 아직도 지난 정부가 박아 놓은 이른바 ‘대못’으로 인해 이런저런 사회적 갈등과 부담이 만만치 않다. 국방에 박혀 있는 대못의 상흔도 그에 못지않다. 그동안 그대로 끌어안고 오다 보니 밖으로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내상(內傷)은 오히려 더욱 깊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핵심적 억제력이자 효율적인 국가 안전장치라 할 한미연합사를 스스로 해체하면서 동시에 군의 의무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병력도 현역 50만 명에 예비역 180만 명, 총 230만 명으로 감축하기로 법제화한 것이다.

우리가 이런다고 북한이 상응한 조치를 할 것이라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국방백서에 의하면 북한은 복무기간 10년인 120만 명의 현역과 770만 명의 준군사 부대를 포함한 총 890만 명의 대군인데도 미사일과 특수전 병력 같은 것들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군을 ‘고도 과학기술군화’한다고 하지만 북한 군대라고 왜 과학화에 소홀할 것인가. 과학기술군화하면 전력효율이야 높아지겠지만 원래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처럼 아예 차원이 다른 전력이라면 몰라도 같은 재래식 전력의 경우에는 다소의 질적인 우세가 양적인 압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사(戰史)의 교훈이다. 더욱이 북한은 핵전력까지 갖추어 가고 있다. 장차 우리 국군이 과연 이 대규모 북한군의 도발을 억제하고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군 전력 약화시킬 복무기간 단축

복무기간의 단축은 더 큰 문제다. 2005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안정적 전투력을 유지하려면 최소 22∼25개월의 복무기간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18개월 복무로는 안정적 전투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조금이라도 문제점을 보완해보려고 만든 장기유급지원병 제도도 정작 목표로 했던 주특기 병력 소요는 충족하지 못한 채 일반병사들과의 갈등으로 지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더욱이 저출산으로 가용 병력자원이 줄어들고 있어 18개월 복무를 고집하다가는 2022년 이후에는 아예 50만 병력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때는 병력을 더욱더 줄일 것인가.

이런 조치들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핵을 만들고 있는 북한에 안심하고 만들어도 좋다는 신호가 되고, 북의 궁극적 승리를 예언하는 신탁(神託)이 되어 무력적화통일의 의지를 고양하지는 않을 건가. 그 반면 당시 연합사 사령관은 “주한미군은 감축하지 말라면서 한국은 지상군을 40%씩이나 줄이느냐,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가…” 하는 볼멘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한 불만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시점도 아니다. 지금은 북한 핵 위협이 직접 우리 머리 위를 덮쳐 오고 있는데, 중국은 세계가 무어라 하던 오불관언(吾不關焉)인 채 핵 해결보다는 김정일 체제 보호에 진력하고 있고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중 관계가 21세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칭화대 어느 전 연구소장은 최근에도 “한반도를 조선성(朝鮮省)으로 만드는 것이 중국의 꿈”이라고 말했다. 요동치는 동북아 안보질서가 내다보이는 듯하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단순한 문서만이 아닌 연합사로 연결된 구조적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매우 소중한 시기이다. 한국의 국방력도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특별히 강하고 튼튼해져야 할 때인 것이다.

하필 이런 때에 어떻게 그런 구상이 가능했는지 철딱서니 없는 발상 자체를 꾸짖고 질타하는 군 원로와 논객이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런 정책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을 보면서 주적(主敵)이 불분명하던 10년 햇볕 속에서 군의 전략적 안목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군 기강 문제도 군의 예기(銳氣)와 사기가 무너진 때문일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안보의 뇌수와 심장을 포함해서 우리 국방의 혈맥 곳곳에 대못이 박혀 있는 셈이다.

작은 희생이 내일의 재앙 막는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대못을 빼내야 한다. 머지않아 휘몰아쳐 올, 더할 수 없는 도전과 기회가 혼재해 있는 복합적 안보태풍을 생각하면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내 아들의 힘든 군대생활이 몇 달 줄어든다는 것만 기뻐하다가는 자칫 미래를 통째로 잃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명한 자는 오늘의 작은 희생으로 내일의 큰 재앙을 막는 법이다. 필요하면 다소의 희생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합사를 살려 나가고 스스로 국방의 손발을 묶고 발전을 옥죄는 어리석은 법은 시급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적 깨달음이 필요한 때이다.

김희상 객원논설위원·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khsang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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