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안 했다고, 늦게 귀가했다고 자녀에 회초리 들었다가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4일 2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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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전국 255개 경찰서 ‘아동학대 수사업무 매뉴얼’ 배포
법원의 유죄 판단 사례 알려 아동학대 적극 대처

자녀가 숙제를 하지 않거나 귀가 시간이 늦다는 등의 이유로 부모가 회초리를 들었다가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자녀에게 아령을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게 하거나 하루에 식사를 한두 끼만 먹이는 것도 학대행위로 간주돼 수사 대상이 된다. 영아를 태운 유모차를 수십 차례 흔들며 겁을 줘도 범죄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찰청이 24일 전국 255개 경찰서에 배포했다고 밝힌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에는 훈육 목적이라고 해도 부모가 자녀에게 신체·정서적 학대를 가하면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지침이 담겨 있다. 경찰은 아동학대 유형을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 등으로 세분화하고 각 유형별로 구체적 판례가 담긴 매뉴얼을 일선 경찰서에 배포했다. 그동안 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학대행위에 대한 처벌 사례를 경찰관들에게 알려 학대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에 해당하는 학대행위를 기존 판례에 기초해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부모와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학대를 처벌할 수 있는 유형을 세분화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자녀가 거짓말을 자주 한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들고 아동의 머리 팔 허벅지 등을 때려 멍들게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맨손으로 자녀를 수차례 때렸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처벌 대상으로 제시했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도 형사처벌 대상임을 분명히 밝혔다. 부모가 자녀에게 수차례 욕설을 하고 다른 아동이 맞는 학대 장면을 노출시켰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고 숙제를 안 해오는 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왕따라고 지목해 실제 왕따를 당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어린이집 교사가 아동을 잠재우지 않거나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것도 수사 대상이 된다.

자녀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등 교육을 받지 않게 내벼려 두는 것은 아동복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질병을 앓는 아동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매뉴얼에 포함됐다. 경찰 관계자는 “훈육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을 갖춰야 한다”며 “훈육을 위한 도구 사용은 지양돼야 하고 때리는 건 무조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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