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반정부 시위…북아프리카 ‘제 2의 아랍의 봄’ 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1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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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째 지속되는 수단, 알제리 반정부 시위
모로코에서도 교사들이 정부 정책 항의 시위
“‘아랍의 봄’ 판단은 아직 이르다” 부정적 시선도

“아랍의 봄은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몬세프 마르주키 전 튀니지 대통령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쓸었던 민주화 혁명 ‘아랍의 봄’의 불씨가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마르주키 전 대통령은 이날 “아랍의 봄을 반드시 또 발생할 것이다. 커피잔에 적힌 글귀나 신비주의가 아니다. 실제 불의에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재정권 시절 반체제 활동을 해왔던 인권 운동가 출신이다. 2011년 1월 거리시위를 통해 25년간 집권한 독재자 온 벤 알리 전 대통령이 축출된 뒤 4년 동안 임시 대통령을 맡았다.
북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제 2의 아랍의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역시 ‘두 번째 아랍의 봄 불꽃이 일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최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정부의 독재와 무능,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정부 시위 열풍이 가장 거세게 불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 수단이다. 지난해 12월 정부의 빵 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퇴진 운동으로 확대되며 3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198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시르 대통령은 아랍의 봄 당시에도 강경 진압으로 정권을 지켜내며 30년째 독재를 이어오고 있다.

바시르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반정부 시위 참여자를 재판하기 위한 임시 사법기구인 비상법원도 구성한 상태다. 또 연방 정부를 해산하고, 모든 주의 주지사를 군부 고위층으로 교체했다. 경찰에게는 언제든 건물 수색, 시민들의 이동 제한, 개인의 재산 및 부동산을 압수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수단 주요 도시에서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사이 크고 작은 유혈사태도 빚어지면서 지금까지 5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지난달 시작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퇴진 시위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알제리 시민들은 1999년부터 20년째 집권하고 있는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지난달 “5선에 도전하겠다”고 밝히자 거리 시위를 통해 출마 포기 선언을 끌어냈지만 여전히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5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4월 18일 예정됐던 선거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4월 29일 공식 임기가 끝나는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정확히 언제 물러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알제리 시민 수십만 명은 수도 알제 등 주요 도시에서 “대통령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고, 지금까지 약 100여 명이 체포됐다.

모로코, 요르단 등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2일 모로코에서는 수천 명의 교사들이 임금 인상 및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궁까지 행진하려는 교사들을 막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요르단에서도 정치권의 부정부패 등에 항의하며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이다. 수단 반정부 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도 ‘빵 가격’이다. 수단 정부는 지난해 말에 밀, 연료 등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했고, 이 때문에 주식인 빵 가격은 3배 이상 올랐다. 알제리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것은 주로 젊은층인데 알제리 11% 달하는 실업률과 어두운 미래 등이 이들을 거리로 끌어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부 국가의 반정부 시위가 다른 국가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성공의 기쁨보단 상처를 더 많이 남긴 탓이다.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주화 정부 수립에 실패했고, 오히려 독재정권은 강화돼 아랍의 봄 시위를 이끌었던 많은 인사들이 이미 죽거나 감옥에 수감 중인 상황이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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