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여론도 계량화하라는 정치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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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라면을 끓일 때마다 물 조절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대충 눈대중으로 물을 부었다가는 짜거나 싱겁기 일쑤다. 그러기를 되풀이하던 차에 손에 쥐게 된 계량컵은 그야말로 신세계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산 라면 한 묶음에 사은품으로 딸려온 그 녀석은 이름처럼 계량된 맛을 선사해줬다.

매번 똑같은 냄비에, 이젠 대충 얼마나 물을 부으면 될지 가늠할 만도 하지만, 계량컵에 대한 맹신을 끊고 싶은 마음이 없다. 굳이 물 조절 실패의 위험을 자초해 계량컵으로 보장 받고 있는 계량된 맛이나마 망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라면 국물에 더 썰어 넣는 파나 김치의 양에 따라 물 양을 조절해가며 새 맛을 찾는 도전 자체가 없어진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역시 수치와 계량화에 입맛을 단단히 들인 모양새다. 특히 각 대선 캠프의 언론 대응 모습에서 느껴지는 수치를 이용한 계량화 시도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왜 우리 주자 뉴스를 조금만 다루느냐”, “왜 상대 주자 뉴스가 더 많이 나오느냐” 이런 식의 항의를 할 때, 여론조사 수치 등을 근거로 삼는 게 일상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수치가 높으면 높은 대로, 또 낮으면 낮은 대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수치를 들이밀며 자신들에 대한 뉴스 비중을 높여 달라는 요구가 크게 늘었다.

심지어 한 토크 시사 프로그램의 대선 주자별 토크 시간을 재서는 일방적으로 편파 방송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캠프마저 등장했다. 토크 주제가 해당 주자에게 유리한 것인지, 혹은 비판하는 내용은 아닌지는 따지지도 않는다. 단순히 ‘토크 시간’이라는 수치로 계량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셈이다.

또 다른 캠프에서는 정당별 평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현재 여론조사 순위가 어쨌든, 각 당에서 나올 대선 주자는 1명뿐이라는 게 정당별 평등 요구의 근거다. 예를 들어 대선 주자가 3명인 A당이든, 대선 주자가 1명인 B당이든 결국 본선에는 1명만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A당 대선 주자 3명이 현재 여론조사에서 모두 상위권을 기록하더라도, 그 순위를 방송 시간 배정이나 지면 배정 자료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정당 정치의 특성을 감안했을 땐 일견 합리적인 주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주장의 배경에는 정당 논리만 있을 뿐, 여론의 관심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 거북하기 짝이 없다. 국민인 시청자와 독자의 취향은 상관없이 정당 정치라는 계량컵에 맞춰 보도 횟수나 분량을 맞출 경우 오히려 여론이 왜곡될 가능성은 커진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인물과 무슨 정책에 관심을 갖는지 살피고 탐구하는 자의적인 취재 영역이 좁아질 수 있다. 이슈와 여론을 선도하거나 추적하는 습성이 강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라면 물을 계량컵으로 맞춰서 끓이면 실패할 확률은 줄어든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결과 역시 계량화된 맛을 벗어날 수 없다. 시큼한 김치 국물이나 시원한 된장 국물, 진한 사골 국물을 더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또는 진일보한 맛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책 경쟁, 인물 경쟁도 없이 그저 정당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챙길 수 있는 계량화된 이득 챙기기에 안주하다 보면 ‘새 정치’를 보여주진 못할 것이다. 결국 민심의 선택을 받는 길도 줄어들 것이다.

언론과 여론을 계량컵 안에 집어넣으려는 위험한 발상 대신 신선한 재료와 좋은 양념으로 새 정치를 계량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hot@donga.com
#계량컵#대선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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