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트럼프의 요란한 데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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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기록적인 속도로 일을 잘 추진해 나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첫 주례 연설에서 자신의 취임 1주일을 이렇게 자평했다. 20일 취임 직후 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굵직굵직한 행정명령들을 쏟아냈다.

 월요일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발표해 일본 등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수요일엔 멕시코와 아무런 상의 없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전격 발표했다. 금요일엔 이라크 시리아 등 7개 무슬림 국가 출신 주민과 난민의 미국 입국을 막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마치 ‘트럼프의 미국’은 ‘오바마의 미국’과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듯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트럼프는 분명 가장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트럼프가 취임 후 첫 일주일간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은 12개에 이른다. 전임인 버락 오바마가 5개였고 조지 W 부시와 빌 클린턴은 이보다 적은 2개씩이었다. 내용을 들여다봐도 오바마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행정명령을 제외하곤 자잘한 이슈들이 대부분이었다. 숫자로나 파괴력으로나 트럼프 행정명령들 쪽에 ‘헤비급’ 이슈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는 행정명령 발령으로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한 트럼프는 이제 정상외교로 눈을 돌리고 있다. 27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28일엔 일본 독일 러시아 프랑스 호주 등 5개국 정상과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거나 앞으로 중시할 국가들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위협을 논의했다. 제1 당사자인 한국을 제쳐두고 일본과 북핵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다행히 30일 오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와 통화를 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140자에 불과한 트위터 으름장만으로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을 무릎 꿇린 트럼프다. TV 뉴스를 보다가 즉흥적으로 분노의 트윗을 날리기도 한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한국과 한국 기업이 타깃이 될지 모른다. 때마침 트럼프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2월 2∼4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설명할 좋은 기회다.

 트럼프로부터 ‘TPP 탈퇴’라는 강펀치를 얻어맞은 일본은 벌써부터 리스크 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다음 달 10일 워싱턴에서 트럼프를 만나는 아베 총리는 “미국 제일주의를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는 뜻을 전달한다고 한다. 맞서기보단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게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처럼 큰 나라들도 국익을 걱정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타깃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데,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에게선 이런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미 외교를 어떻게 펼칠지부터 스스로 밝혀야 한다. 일본과 꼬여 있는 위안부 문제도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특히 주한미군 2만8500명의 생명 보호와 직결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발언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 문제와 사드 배치가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선 주자들이 미국보다 중국 눈치를 더 본다는 인상을 준다면 미국 우선주의로 똘똘 뭉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까.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취임식#tpp 탈퇴#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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