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중동 환자 모셔라” 병원에 기도실 만들고 할랄식 서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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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이슬람, 두 가지 시선

6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1층에 문을 연 무슬림 기도실. 아랍어로 ‘기도실’이라고 적혀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6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1층에 문을 연 무슬림 기도실. 아랍어로 ‘기도실’이라고 적혀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어른 다섯 명이 누우면 꽉 찰 듯한 작은 방, 고개를 드니 천장에 암호와 같은 글자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중동 지역의 전통 의상 ‘디슈다샤’를 차려입은 한 남성이 맨발로 들어오더니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엎드린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1층 무슬림 기도실. 화살표를 따라 메카를 향해 절하는 이 남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이역만리 한국까지 날아온 중동 환자의 가족이다.

기도실에 주전자가 있는 이유

한 이슬람 여성이 서울대병원 무슬림 기도실 천장에 그려진 화살표(메카가 있는 방향·동그라미 부분)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 국내 대형 병원들은 앞다퉈 ‘큰손’ 중동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 이슬람 여성이 서울대병원 무슬림 기도실 천장에 그려진 화살표(메카가 있는 방향·동그라미 부분)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 국내 대형 병원들은 앞다퉈 ‘큰손’ 중동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6일 문을 연 서울대병원 무슬림 기도실은 손과 발을 씻는 세족실과 남자 기도실, 여자 기도실로 이뤄져 있다. 전부 다 합해서 20m²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에는 숙원이었다. 수술실과 응급실을 늘릴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세족실엔 샤워기뿐 아니라 플라스틱 주전자도 구비돼 있다. 같은 무슬림이어도 나라마다 기도하는 방식이 다른데, 중앙아시아 국가에선 기도 전 반드시 뒷물을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수술을 지켜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압둘라 라시드 씨(33)는 낮 기도를 마치고 기도실을 나오며 “예전엔 병실에서 기도하다 보니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거나 중간에 왕진하는 의료진이 드나들어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기도실이 이슬람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 병원에서 일하는 중동 국적 직원과 환자, 보호자들에게 수차례 조언을 구했다. 이태원에서 예배용 카펫과 꾸란(이슬람 경전)을 사올 때도 중동 환자들의 감수를 거쳤다.

서울대병원만이 아니다. 중동의 많은 백혈병 환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찾는 서울성모병원에도 무슬림 기도실이 갖춰져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병실에서 중동 국가의 TV 채널을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족이 함께 와 피부 관리까지

한국의 대형 병원들이 중동 환자 잡기에 신경 쓰는 일차적인 이유는 이들이 쓰는 의료비가 최근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오는 중동 환자는 지난해 6000명을 돌파해 6년 만에 10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들이 쓴 의료비는 80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환자와 비교해 보면 중동 18개국에서 온 환자를 다 더해도 16분의 1도 안 되지만 이들이 쓰는 1인당 의료비는 중국인의 3, 4배다.

1990년대까지 중동 환자에게 의료 분야의 ‘약속의 땅’은 미국이었다. 2000년 한 해에 중동 환자가 미국에서 쓴 의료비는 14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였다. 하지만 이듬해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고 반(反)이슬람 정서가 강해지면서 미국을 찾는 중동 환자는 1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이후 중동 환자들은 독일 영국 등 유럽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로 발길을 돌렸다.

2000년대 후반 한국 의료 기술의 전문성과 안전성이 알려지며 중동 환자들이 국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자국에선 간단한 진료를 보는 데도 몇 주, 큰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4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한국에선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신속히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특히 2011년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을 방문하는 자국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환자 유입이 늘었다.

중동 환자는 의료비만 많이 쓰는 게 아니다. 중동 환자가 혼자 한국에 오는 것은 100명 중 2, 3명꼴일 정도로 드물다. 절반 이상은 배우자나 자녀 등 2명 이상 데려오고, 형제자매까지 함께 오는 사례도 흔하다. 이 때문에 중동 환자들은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나 호텔 스위트룸을 선호한다. 10명 중 6명은 국내에 한 달 이상 체류한다. 환자 1명을 유치하면 그와 함께 오는 식솔들이 한국에서 쓰고 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사막 기후인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여성 보호자는 피부 보습과 노화 방지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들은 화장품 업체가 운영하는 고급 피부 관리숍에서 비만 관리나 노화 방지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스파에 한방 약재 성분을 사용한 ‘한국형 스파’도 중동 환자의 보호자에게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중동 환자에게 미용성형 시술에 매기는 부가가치세 환급 △전문 통역사 양성 △보호자가 즐길 수 있는 관광 상품 개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중동 ‘고향의 맛’ 내려 연구 거듭

‘할랄식’은 병원들이 특별히 공들이는 부분이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할랄식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 처리 가공된 식품을 조리한 음식을 말한다. 돼지고기나 알코올을 사용해선 안 되고, 소나 닭도 성인 무슬림이 기도를 올린 뒤 도축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병원의 할랄식에 대한 중동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5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환자 116명을 조사해 보니 할랄식은 메뉴가 적고 섭취하기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내 병원이 중동 환자들에게 할랄식을 처음 내기 시작한 2010년경엔 환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맛이 아니다”라거나 “도저히 못 먹겠다”라는 환자들도 있었다. 한국 환자가 해외에서 치료받을 때 어설프게 모양만 낸 김치찌개나 미역국만 계속 먹다 보면 제대로 기운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중동 환자가 통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비의료 서비스가 바로 할랄 음식이다.

각 병원 급식 담당과는 중동의 ‘어머니 손맛’을 내기 위해 학습조직까지 꾸리고 본격적으로 메뉴 개발에 나섰다. 현지의 맛을 가장 잘 재현한다는 중동 음식점을 찾아가 직접 조리법을 배우기도 하고,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향신료를 중동 지역으로 출장 가는 직원에게 부탁해 사들이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할랄식 품평회를 열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간호사가 할랄식에 대한 평가를 듣는 병원들도 생겼다. 서울대병원은 1000명이 넘는 입원 환자 중 10여 명에 불과한 중동 환자를 위해 별도의 조리실에서 할랄식을 만들 정도다. 그 덕분인지 최근엔 환자들의 평가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 서울대병원 급식영양파트장은 “환자가 ‘고향에서 먹은 그 맛’이라고 말해 줄 때 가장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할랄 인증은 할랄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식료품과 의약품, 화장품 업계에선 20억 명이 넘는 무슬림 소비자를 잡기 위해 할랄 인증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 업체들은 할랄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무슬림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적극 알린다. 종교나 인종을 떠나 깐깐한 인증 절차를 통과한 안전한 식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보단 의료 발전 계기로”

의료계에선 늘어나는 중동 환자를 ‘돈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내 의료 서비스 전반을 발전시킬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의료를 경험한 중동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국내 환자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국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국제적인 질병 트렌드를 파악하고 국가별 질환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까다로운 중동 환자를 상대하다 보니 채혈 시 장갑을 반드시 껴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울 땐 반드시 비닐 전체를 갈아야 한다는 등 의료진의 작은 습관부터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로 들어오는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넘어 각국의 움직임을 긴밀히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중동 환자 중 절반이 넘는 아랍에미리트에선 최근 한국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티카’ 보험의 국외 의료비 보조 범위를 축소하기로 결정해 해외 의료관광이 전반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각국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환자 유치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박노명 인턴기자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4학년  
#무슬림 기도실#중동#할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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