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팅 프라이팬 맘놓고 써도 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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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제품 유해여부 소비자는 깜깜… 정부, 기준치 명확히 제시해야

전남 광양시에 사는 최혜미 씨(30·여)는 1년 전부터 코팅 프라이팬 대신 스테인리스팬을 쓴다. 스테인리스팬은 요리할 때 음식이 잘 눌어붙고 코팅 프라이팬보다 무겁다. 하지만 최 씨는 코팅에서 유해한 화학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스테인리스팬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모를 땐 괜찮았는데 알고 나니 코팅 프라이팬을 못 쓰겠더라”며 “플라스틱 소재의 젖병 등도 환경호르몬이 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심해서 쓰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 씨뿐 아니라 스테인리스팬 사용자가 모인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코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프라이팬을 바꿨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플라스틱 용기의 유해성 우려 때문에 유리 용기를 쓰는 주부도 적지 않다.

생활 속 화학성분의 유해성 논란이 커지면서 정부의 기준치도 인체에 보다 안전한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는 화학물질별로 기준치를 정해 놓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지만 않으면 해롭지 않다는 식으로 규정해 소비자 불안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생활 속 피할 수 없는 화학물질


코팅 프라이팬에서 논란이 되는 유해물질은 ‘과불화화합물(PFCs)’이다. 탄소와 불소가 결합된 이 화합물은 물과 기름에 저항하는 특성 때문에 프라이팬 코팅은 물론이고 의류 방수처리에도 쓰이고 있다. 특히 프라이팬 코팅의 대표 격인 ‘테플론 코팅’에는 이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퍼플루오로옥탄산(PFOA) 등이 쓰인다. 체내에 흡수되면 쉽사리 배출되지 않는데 동물실험 결과 암을 유발하고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 물질이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비스페놀 계열 물질 역시 우리 주변 곳곳에서 마주치는 유해 화학물질이다. 여성환경연대 등은 15일 일부 대형 유통업체의 영수증에서 내분비 교란의심물질(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와 비스페놀S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요 대형마트와 백화점 6곳에서 수거한 영수증을 조사한 결과 신세계백화점 홈플러스 현대백화점 이마트 영수증에서 비스페놀A나 비스페놀S가 0.7∼1.2% 들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비스페놀 계열 화학물질은 영수증과 공공기관 순번대기표 등에 쓰이는 감열지에 사용되고 있다. 또 음료캔이나 종이컵의 코팅 등에도 쓰인다.


○ “무해한 수준? 안전 확신 못해”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은 이런 물질의 유해성이 확인된 바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신재호 을지대 임상병리학과 교수는 “그 물질이 안전하다는 게 아니고 노출량이 기준치보다 적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소규모 집단만 조사했거나 노약자 같은 민감군에 대한 기준은 없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홍윤철 서울대 환경보건센터장(예방의학과 교수)은 “정부의 유해물질 기준마저 오래전의 동물실험 결과물에서 비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산정돼 근거가 불확실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치 이하의 저농도에서 인체에 악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물질도 적지 않다.

환경부는 다림질보조제에 포함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농도도 안전한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노출계수를 정밀 분석한 결과 와이셔츠 한 벌을 다릴 때 가습기 살균제를 5시간 사용했을 때와 같은 양이 배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자료들은 화학물질 제조·사용 업체에만 공개되고 있다.


○ “상세 정보 공개해 불안감 덜어야”


전문가들은 생활용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리기 위해 위해성 평가에 사용된 계산식인 ‘노출계수’를 업체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프라이팬 코팅에 쓰인 퍼플루오로옥탄산은 “해당 물질의 농도가 안전 수준”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몇 차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높은 온도로 조리에 사용했을 때 안전했다는 것인지 밝히는 식이다. 이는 같은 화학물질이라도 소비자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을 유난히 많이, 자주 쓰는 소비자도 자신의 사용량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현재 위해성 노출계수 자료는 화학물질을 제조 및 사용하는 업체에만 공개돼 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일반인이 보기엔 외계어 같은 성분명을 줄줄이 나열할 게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도형 dodo@donga.com·조건희 정동연 기자
#코팅프라이팬#화학품#유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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