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빈 라덴, 가족에게는 ‘다정다감’…은신처 문건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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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를 주도한 국제 테러단체 알 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 까지 다양한 책을 탐독하며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에 광적으로 사로 잡혀 있던 동시에 가족에게는 지대한 애정을 쏟는 다중 인격적 측면을 가졌던 것으로 보여주는 문건이 20일 공개됐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를 동원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서 빈 라덴을 사살한 뒤 현장에서 입수한 문건 103건울 포함한 총 409건의 자료를 이날 공개했다. 자료는 빈 라덴이 가족이나 알카에다 지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빈 라덴이 읽은 서적은 물론 미 정부자료까지 망라하고 있다.

●책벌레 빈 라덴

DNI가 ‘빈 라덴의 서재’라는 제목을 단 서적 목록에는 39권의 영어서적이 우선 눈에 띈다. 미국의 군사 정책, 반미 성향의 이론서는 물론 음모이론과 관련된 책까지 있어 빈 라덴이 은신 중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빈 라덴은 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아지즈대에서 경영학석사까지 마쳤다.

목록에는 진보 성향의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의 ‘필요한 환상-민주사회에서의 사고 통제’ ‘패권이냐 생존이냐’ 등이 포함돼있다. ‘필요한 환상…’은 미 정부가 기성 언론을 통해 교묘한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있음을 비판한 촘스키 교수의 대표작이며 ‘패권이냐 생존이냐’는 미국의 팽창주의적 대외 정책을 비판한 책이다.

지난 5세기 동안 열강의 경제·군사력 성쇠를 다룬 역사학자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전략을 기술한 ‘오바마의 전쟁’도 있다.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빈 라덴이 자신의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WP와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이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언젠가는 자신의 은신처를 공격할 것을 간파하고 아프가니스탄 산 속으로 도망쳤어야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알카에다와 9·11 테러를 공모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한 데이비드 그리핀의 ‘새로운 진주만’도 있었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 비밀결사조직 등을 다룬 책도 발견됐고 미 9·11 위원회 보고서, 심지어 ‘델타포스 익스트림 2’같은 온라인 게임의 안내 서적도 포함됐다.

DNI는 은신처에서 누드 사진 등 다량의 포르노그래피도 수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NI 측은 “포르노그래피는 일반에 공개할 내용이 아닌 만큼 비밀해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영국 가디언 측이 밝혔다.

●추가 테러 골몰하며 가족사랑

이날 공개된 문건에는 빈 라덴이 9·11 이후에도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에 골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날짜가 분명하지 않은 한 편지에서 북아프리카의 테러조직원들에게 “IS(이슬람 국가) 설립을 중단하고 서아프리카 남쪽의 시에라리온과 토고의 미국 대사관과 정유회사를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예멘의 알카에다 조직에도 미국인을 타깃으로 삼으라고 촉구했다.

알카에다 리더답게 은신처에는 ‘알카에다 입사 지원서’로 보이는 문서도 다량 발견됐다. 지원서에는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 “자살 작전을 수행하기를 원하는가” “(자살 작전으로) 순교자가 된다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이 있었다. “기소되어 재판받은 적이 있는가” “만성적이고 유전적인 질병이 있는가” 등 ‘부적절한’ 조직원을 미리 걸러내기 위한 질문도 있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테러를 구상해왔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빈 라덴도 가족에 대해서는 넘치는 애정을 과시했다. 4명의 부인과 20명의 자녀를 뒀던 빈 라덴은 자주 가족들과 편지를 교환했는데 여기서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 붓는 아빠로 묘사되고 있으며 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선 사랑에 빠진 청년의 모습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빈 라덴은 이란에서 10년 간 가택 연금 후 풀려나온 부인 중 한 명인 카이리야에게 쓴 편지에서 “이란에서 당신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속삭였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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