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닥쳐서야… 정부 “日 징용현장 유산등재 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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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 밀린 유네스코 외교戰]

바람 잘 날 없는 한국외교 31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윤 장관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바람 잘 날 없는 한국외교 31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윤 장관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조선인이 강제 징용됐던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는 마지막까지 등재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6월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만큼 한국의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21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리 문화 외교 역량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지휘관 없는 문화외교 31일 주유네스코 한국대표부 홈페이지에는 “전임 이상진 대사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였으며, 현재는 신임 대사의 부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 홈페이지 캡처
○ 현장 대일 외교사령탑은 부재 중

2011년 일본이 징용 관련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하자 정부는 일본과 유네스코 회원국을 상대로 “세계유산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2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직접 이 문제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만 화려했을 뿐 정부의 대응은 허술했다.

세계유산 등재와 관리 주무부처인 문화재청은 홈페이지에 올린 ‘세계유산 등재현황’ 자료를 2013년 8월 22일 이후 갱신하지 않았다. ‘한국의 세계유산’ 코너에는 11건의 문화·자연유산이 소개돼 있지만 ‘세계유산 등재현황’ 코너에서 ‘대한민국·한국’을 검색하면 10건밖에 나오지 않는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2014년 한국이 등재에 성공한 남한산성은 물론이고 일본이 지난해 이름을 올린 ‘도미오카 제사장과 실크산업 유산’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유산 지도보기’에도 남한산성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정부 안팎에서 “문화융성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인데, 세계유산에 대한 정부 대응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네스코 주재 한국대표부의 대사 자리가 공석인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지휘관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외교부는 “이상진 전 대사가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의원면직 의사를 밝힘에 따라 후속 대사 임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담당했던 최종문 전 주스리랑카 대사가 협력대표라는 이름으로 ‘출장’을 가 임시로 업무를 맡았지만 대표부를 지휘할 권한이나 대표부의 수장으로 대외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 일본 등재 맞불 전략을 찾아야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등재를 권고하면 대부분 세계유산위원회가 채택해 왔다. ICOMOS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3월 회의를 열고 일본의 ‘군함도’ 등의 등재 신청에 대해 ‘등재 자격이 있다’는 권고 의견을 모았다.

외교 당국자는 “일정 기준만 맞춘다면 이에 대해 등재를 막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어서 현실적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1979년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유대인 수용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나치 만행을 적시했듯 군함도의 진정한 성격이 무엇인지 부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군함도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유물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를 중심으로 서대문형무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 장관은 지난해 4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관계 부처와 상의해 등재할 수 있는지 진지한 검토를 해보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토론회 개최 말고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다.

이와 별도로 여성가족부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목표 시기가 2017년이어서 가시권에 들어오지 못한 상태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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