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1인당 GDP 4만달러 달성, 물류산업 육성이 답이죠”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이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물류산업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이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물류산업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84)은 박정희 정부 출범 초기부터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는 데 깊숙이 간여했던 인물이다. 1964년 박 전 대통령이 독일을 찾았을 때 통역관으로 동행한 것이 인연이었다. 이후 그는 박정희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대통령 경제고문 등을 지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국가산업단지 구축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백 원장은 최근 “한국 경제가 3만 달러 시대를 지나 4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물류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면서 “산업정책, 세제,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대책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류산업 발전을 위한 ‘전도사’로 자임하고 나선 그를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KID 사무실로 찾아가서 만나봤다.
국내 물류시장 규모 年200조원

―KID가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KID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 연구원이다. 1965년 2월에 세웠다. 1964년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방독(訪獨) 당시 ‘아우토반’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설에 필요한 타당성 조사를 바로 우리가 했다. 사람들은 고속도로 건설을 많이 반대했다. 그땐 자동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 몇 없었으니까.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큰 길을 닦을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라는 물류 중심축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산업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KID의 첫 연구사업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타당성 조사였다는 점에서 KID는 초기부터 물류산업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에 깊이 간여해 왔는데….

“1960년대만 해도 수출할 아이템이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던 때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했다. 독일식 시스템을 많이 도입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립을 돕고, 중소기업 전담은행인 기업은행을 만드는 것도 건의했다. 창원이나 구미, 여천에 있는 공업단지는 모두 우리 연구원에서 다듬었다. 대한민국의 개발 역사와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1964년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1억 달러를 수출했다. 그때부터 전 국민이 수출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결과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현 시점에서 특별히 물류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가 4만 달러 시대를 향해 가려면 새로운 산업발전 로드맵이 필요하다. 제조업만으로는 4만 달러 진입이 어렵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2만 달러 수준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건 거의 다 했다. 하지만 빈틈이 있다. 허점이 생긴 거다. 그게 바로 물류산업이다.”

―한국이 물류산업 분야에 강점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물동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국내 물류시장 규모가 연간 약 200조 원인데 매년 14%씩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창고업, 수송업 등을 모두 따로 분류하다 보니 다들 제각각 움직인다. 물류산업을 관할하는 부서는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전체를 총괄하는 중심이 없는 셈이다. 국력 낭비다. 제도를 손본다면 물류산업은 성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백 원장은 한국이 배워야 할 사례로 네덜란드를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제조업 비중이 높지 않다. 그런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달러가 넘는다(2012년 기준 4만6011달러). 그 이유는 ‘로지스틱스’, 바로 물류산업에 있다. 네덜란드는 국제 물류로 먹고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는 운하 덕분에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다. 도시 곳곳에는 물류 창고가 있다. 네덜란드는 또한 화훼산업이 유명하다. 시골에서 재배한 꽃이 24시간이면 세계 각지로 운반된다. 화훼산업도 탄탄한 물류 인프라 덕분에 성장했다.”

―물류산업을 키우기 위해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국가 차원의 정비가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물류산업으로 보고 관리할지 정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물류산업 촉진위원회’(가칭) 같은 조직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각 부처가 따로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통합된 로드맵을 그릴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서는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 듯 물류산업확대회의도 열어 민간 기업들의 목소리를 자주 들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제도 정비-컨트롤타워 설치 시급


백 원장은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위해서도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지금 항만에 가보면 낡은 창고가 참 많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시설도 허름하다. 차량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여서다. 왜 그럴까. 인센티브가 없어서다. 기업 투자가 늘어나려면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물류산업진흥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류산업진흥법에 담아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있나.

“세제, 금융, 제도 등 물류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물류산업 관련 기업에 제조업 수준의 세제 혜택을 주고 금융 지원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물류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별도 분류체계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물류산업 관련 통계나 지수 등 기초적인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당장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세제 혜택을 주면 기업들이 먼저 움직인다. 낡은 장비를 첨단으로 바꾸고 새 기술도 도입할 거다. 그뿐인가. 전망이 밝아지니 사람이 몰리게 된다. 각 대학에는 ‘물류학과’가 생길 것이다. 물류를 전공한 학생들이 기업에 들어가 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물류산업 종사자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다. 사람들이 물류산업 종사자더러 국부를 창출하는 산업역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농업, 관광 등 파급효과도 크다. 물류 인프라를 통해 우리나라의 맛있는 농산물도 손쉽게 수출하고 관광객도 늘어나게 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다른 게 아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게 만드는 이게 바로 창조경제다.”
청년실업 해결도 가능

백 원장은 물류산업 진흥으로 국가와 동북아 차원의 질서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했다.

“동북아는 세계 최대 생산지이자 소비지다. 한국을 중심으로 반경 1500km 안에는 중국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다롄(大連) 칭다오(靑島), 일본 도쿄(東京) 오사카 (大阪) 고베(神戶) 등 주요 도시가 몰려 있다. 앞으로 이 도시 사이에 엄청난 물류 교류가 예상된다. 게다가 현재 개척 중인 북극 항로가 열리면 유럽으로 가는 최단 항로가 뚫린다. 이 과정에서 부산, 광양 등은 물류 허브기지로 부상할 수 있다.”

화제를 넓혀서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해 나가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 봤다. 백 원장은 1960, 70년대의 힘든 시기를 거쳐 온 기성세대와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해 온 신세대들이 갖고 있는 인식의 차이점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

“세대 간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갈등 비용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공직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정부투자기관 수가 800개가 넘고 이들이 가진 부채만 해도 500조 원이 넘는다.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돼서 예산과 자리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중산층 몰락도 걱정이다. 신용불량자가 늘고, 심지어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민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회를 떠받치는) 허리가 없어지고 있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도자나 지성인들은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과거 우리가 역경을 극복했던 경험을 다시 살려내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서, 정신적으로도 조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담=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정리=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물류시장#한국산업개발연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