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용감한 경찰? 무모한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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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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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훈 사회부 기자
지명훈 사회부 기자
24일 오전 충남 천안시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납치범과 경찰의 ‘도심 총격전’은 갱스터 영화를 방불케 했다. 인구 밀집지역에서 10분간 대치하면서 범인이 엽총 3발, 경찰이 권총 9발을 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다행히 범인은 검거했고 누구도 다치지는 않았다. 서북경찰서와 동남경찰서의 순찰차가 거의 동시에 달려와 양팔 붙들 듯 범인의 도주 차량을 꼼짝 못하게 막아서는 장면은 공조작전의 백미였다.

그러나 이는 결과가 그렇다는 말이다. 범인 검거 과정을 살펴보면 경찰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범인이 윈도틴팅(선팅)이 된 차량 안에서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차량 유리를 부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경찰은 범인이 엽총을 발사하는 상황에서 범인 차량 지붕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거나 벽돌 등으로 앞뒤 유리창을 깨려 했다. 범인은 160여 발의 탄알을 더 갖고 있었다. 한 형사는 차량의 문을 열고 테이저건(전기총)을 쏘려다 범인이 몸을 돌려 엽총으로 응사해 총에 맞을 뻔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조준 사격을 했다면 여러 명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관들은 방탄복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출동했다. 경찰 방탄복은 장비창고에 쌓여 있다. 전쟁 때나 입도록 되어 있다. 그 대신 방검복(防劍服·칼 등에 뚫리지 않도록 제조된 옷)이 지급돼 있지만 이 역시 불편하다는 이유로 잘 입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두고 형사들은 “(인명사고가 없었던 것은) 천운(天運)”이라고 입을 모았다. 총잡이를 육탄으로 제압하는 과정에서 부상하지 않은 게 기적적인 일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위험한 상황은 2012년 2월 15일의 충남 서산 엽총난사 사건에서도 빚어졌다. 범인이 전 직장 직원들에게 엽총 50여 발을 쏴 3명의 사상자를 낸 뒤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경찰은 추격에 나섰다. 그때도 경찰 선발대는 테이저건만 소지했다. 절차에 따라 총기를 지급받으려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범인 차량에 접근하다 엽총 세례를 받았다. 한 형사는 총알이 머리 주변을 스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흉기를 든 범인과 대치하는 경찰이 무너지면 그 자체로도 불행이지만 시민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일선 경관의 용기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들을 대책 없이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모는 현 시스템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후진적 경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천안에서

지명훈 사회부 기자 mhjee@donga.com
#경찰#총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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