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동주]‘대학서열문화’에 멍드는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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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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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주 사회부 기자
조동주 사회부 기자
‘644 논쟁’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논란은 ‘숭쇼’라는 한 누리꾼이 지난해 말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언어 6등급, 수리 4등급, 외국어 4등급을 받고 A대 공대에 예비후보 10순위로 뽑혔다는 글을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수능 성적표와 A대 홈페이지의 전형 결과까지 공개했다. A대는 오랜 전통을 지닌 서울 소재 사학이다. 평균적으로 3등급 초반 이상이 합격권으로 알려진 이 대학 공대에 6-4-4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예비후보 10순위가 됐다고 하자 인터넷에서는 ‘진실게임’ 공방이 시작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A대 일부 재학생은 “‘인(in) 서울 4년제’(서울의 4년제)인 우리 대학에 그런 성적의 학생이 합격했을 리 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A대 입학처에는 “그렇게 성적이 낮은 학생을 절대 입학시켜선 안 된다”는 학부모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A대의 한 재학생은 자신의 학생증을 갈기갈기 조각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에 일부 지방대 학생은 조롱 담긴 게시글을 올렸다. 해당 사이트의 ‘A대 갤러리’에는 한 지방대생이 만든 ‘A대 어서 와, 지방은 처음이지?’라는 패러디물, 644번 시내버스에 ‘A대행’이란 간판을 합성한 사진까지 등장했다. “‘나도 7-5-5인데 합격했다”는 비아냥조의 글도 올랐다. 그러자 A대 측은 허위 사실 유포자에 대해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인터넷에는 ‘숭쇼’의 합격 주장은 거짓일 것이라는 글이 많이 올라왔지만 18일 본보 확인 결과 ‘숭쇼’는 실제로 이번 A대 입시에서 예비후보 10순위에 올라 있다.

‘숭쇼’가 지원한 A대 건축학부는 이번 입시부터 수리 ‘가’형과 과학탐구를 택한 수험생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전형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쉬운 수리 ‘나’형을 택한 학생이나 사회탐구를 택한 문과생도 교차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벌 대학들로부터 ‘나사대’(수리 ‘나’형을 허용하고 사회탐구를 택한 문과생의 교차 지원을 받는 학과라 이과로서 경쟁력이 약하다는 비하 의미)라는 조롱을 듣자 전형을 바꿨다. 그러자 지원자 수가 줄어 2012년 90점이었던 이 학부 최초합격자 평균백분율이 올해 80.1점으로 떨어졌다. ‘숭쇼’는 과학탐구 두 과목에서 각 1, 3등급을 받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수리 ‘가’형에서 4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예비합격자가 된 것이다.

‘6-4-4’ 논란은 대학을 점수 순으로 줄 세우고, 대학 간판 순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해온 한국사회의 뒤틀린 서열의식이 낳은 자화상이다. 정부는 이를 바꾸기 위해 수능 성적표에 원점수를 없애고 표준점수와 등급만 표시하는 등 갖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 정도 대책만으로 ‘대학 서열문화’를 바꾸기에는 그 뿌리가 너무나 깊은 것 같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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