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욱]불경기때 ‘中企 우산’을 뺏지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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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 전 회장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 전 회장
유럽 및 미국 경제 침체로 수출 기업들이 매출 감소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대유럽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5% 감소한 295억9281만2000달러이고, 유럽 진출 기업의 82% 이상이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내수 부진보다 자금조달 어려움 호소


중소기업중앙회가 올 7월 중순 135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강지수 분석에 따르면, 최대 경영 애로요인으로 내수 부진을 지적한 응답자 비율이 6월 57.6%에서 60.69%로 상승했고, 매출 감소로 자금 조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이 6월 21.3%에서 24.3%로 상승했다. 이는 내수 부진보다 자금 조달 어려움을 호소한 기업 비율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은행들은 기업의 대출이나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신용평가에서 담보 가치, 기업의 현금 흐름 등 재무지표에 중점을 둔다. 은행의 기업대출은 대부분 차환을 통한 1년 만기 대출이므로, 재무지표가 좋지 않다고 은행들이 차환을 해주지 않으면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난으로 직결된다.

은행들로서는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바젤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차환 조건의 1년 만기가 탁월한 대출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은행의 건전성만 고려한 것이고, 대출기업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호경기 때는 경쟁 은행들보다 훨씬 낮은 금리를 제시하며 고객들을 끌어온 후, 경기가 안 좋아지면 대출금을 회수하는 악명 높은 방식으로 소위 ‘건전한 은행’으로 성장해 온 은행들도 있다.

한국 은행들의 오랜 관행이 물적·인적 담보 대출, 정부 보증 대출 등이 되다 보니, 기업의 미래 성장성 및 현금 창출 능력을 평가하는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했다. 재무지표는 기업의 과거 성과 측정 수단일 뿐, 기업의 현재 및 미래의 현금 창출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다. 한국의 은행들도 호경기와 불경기에 일관된 대출 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의 미래 현금 창출 능력을 평가하는 비재무지표를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기업의 근원적 경쟁력은 기업가의 능력과 기업의 인재에 의해 결정되므로, 대출심사 평가 기준에도 비재무지표 요소들을 반영하게 되면, 지나치게 재무지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현재 불황으로 현금 흐름이 악화되었지만, 그 기업이 경쟁력을 더 향상시킬 수 있는 인재들을 잃지 않는다면, 경기가 회복될 때 과거보다 높은 경쟁력으로 더 많은 매출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재무지표가 악화되더라도, 유능한 엔지니어들의 확보 여부가 비재무지표가 될 수 있으면, 중소기업 신용평가 등급 하락이 자금난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단절시킬 수 있다.

대출 심사때 非재무지표 반영해야

그러나 은행의 건전성만을 우선시하고 기업의 부도를 시장경제 논리로 방치하게 되면, 은행의 미래 성장도 보장할 수 없다. 불경기에 대출금을 회수해 가는 은행에는 결국 호경기가 되더라도 고객이 없다. 기업들이 망해버린 마당에 무슨 고객이 있겠는가. 스스로에게 발목이 잡히는 은행의 ‘안전 역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야기된 내수 및 수출 부진은 기업가 및 기업근로자의 책임이 아니다. 불경기에도 능력 있는 기업들의 가치를 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비재무지표를 도입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 감독 당국이고, 은행의 중소기업 금리 및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 한국은행이다. 이들의 선제적 역할을 통해, 기업과 은행이 상생할 수 있는 자금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 전 회장
#시론#이종욱#은행#중소기업#대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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