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봉균]복지를 다다익선으로 생각하면 큰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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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16, 17, 18대 국회의원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16, 17, 18대 국회의원
금년부터 모든 소득계층에게 지원키로 한 보육비 지원이 지자체의 분담금(50%) 부담능력이 없어서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재원 조달방식을 놓고 정부와 여당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금년 말까지 부족한 예산은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하고 중앙정부가 내년 예산으로 갚아주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보육료나 양육비 지원은 저출산 해결 예산일 뿐 아니라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적투자다. 그렇지만 재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보완책으로 제시된 상위소득 30% 계층에게는 지원비율을 낮추는 방안은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낼 때 받는 보육료 지원액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양육비 지원액의 3배 정도로 많은 것은 문제가 많다. 정부는 지원액을 똑같이 하고 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복지예산을 둘러싼 충돌은 이뿐만 아니다. “총선 복지공약을 지켜야만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새누리당과 “그런 식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 없다”는 정부가 맞서고 있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원마련을 위해 대기업과 부자를 표적으로 증세까지 표방하고 나섰다.

현재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복지 경쟁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국가경영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재정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며느리도 빚을 지지 않으려면 식구들한테 욕을 먹어야 하는 법인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이, 복지를 다다익선(多多益善·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대선 앞두고 여야 복지 경쟁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정부가 아무리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기업이 도산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국민생활은 처참해진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재정건전성은 국가경제 안정을 뒷받침하는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이고 복지 확대는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상대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정권을 잡겠다는 여야 정당이나 대선후보들은 복지 확대를 공약할 때 반드시 그 재원이 어디에서 나오며, 재정적자 비율은 얼마나 늘어나는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재정은 해마다 수입 내 지출을 철칙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적자를 냈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흑자를 내서 경기조절기능을 해야 한다. 또한 시대변화에 따라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바꿔서 더 중요한 용도가 생기면 기존 예산을 감축해서라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탄력적 재정 운영은 적어도 5년을 내다보는 국가운영 철학이 있어야 가능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행정부가 대통령 5년 임기에 맞춰 5년 단위 재정운영 계획을 매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전혀 관심이 없다.

다 알다시피 예산심의권을 갖고 있는 국회가 하는 일이란 것이 정기국회 90일 중 마지막 10일 정도 계수조정 한다고 여야가 티격태격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여당이 단독처리하는 게 지난 4년 동안의 관행이었다. 복지를 잘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국회에서 중기 재정계획을 2∼3개월가량 먼저 심의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다음 해 예산안을 제출받아 심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금년부터 5개년 재정운영 계획을 국회에서 먼저 심의하는 것을 의무화해서 각 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는 복지 예산이 중장기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내세운 중기 재정계획은 ‘내년 예산을 균형예산으로 정상화하고, 그 이후 흑자 기조를 유지해서 국가채무 비율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5%에서 3년 뒤에는 3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기에 맞게 대선복지공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도 보편적 무상복지가 향후 5년간 재정적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여 발표하고, 세계 경제가 계속 악화되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4%를 밑돌고, 세수가 부진해질 경우 과연 보편적 무상복지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국가 빚을 늘리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우리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외적 위기대응 능력을 약화시켜 경제 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탄력적 재정운영 5년은 내다봐야

최근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국가든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부채를 통제하지 못하면 경제는 파국을 맞는다는 사실이다. 12년 전의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대기업들의 과도한 부채 때문에 발생했고, 4년 전 미국의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통제받지 않는 부채구조(파생상품) 때문에 확산되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는 정부의 빚은 계속 늘어나는데 국채발행이 어렵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금년과 내년 이후 2∼3년간 세계경제는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3%대 저성장 속에서 가계부채의 위험까지 안고 있기 때문에 국가부채마저 무방비상태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16, 17, 18대 국회의원
#복지#보육비#복지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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