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임]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의 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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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임 지적장애인복지협회 구로지부장
김정임 지적장애인복지협회 구로지부장
웃지 않는 무표정한 11개월 아기를 안고 병원에 달려갔다. 장애가 확실한 것 같다는 의사의 얘기를 들은 그날부터 전쟁 같은 일상이 시작됐다. 25년째다. ‘상당한 중증의 발달장애가 예상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치료실이 있지만 이용자가 많으니 대기하라고 했다. 기약 없는 치료실 순서를 기다리면서 장애인복지관이라는 곳을 찾았다. 역시 오래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과 복지관을 전전하다 아홉 살이 돼서야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에게 양칫물을 삼키지 말고 뱉게 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손 사용이 뇌 활동과 연결된 일인지라 아이는 세수, 머리감기도 제대로 못했다. 그건 약과였다. 다섯 살부터 시작된 간질은 내 뼈를 깎아내는 마음의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대발작을 일으켜 놀라고 안타깝게 만든다. 고집불통에다 자동차 그림에 무조건 집착하는 자폐 성향도 상당하다. 온순했던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유 없이 화를 내며 가족을 때리고 집안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는 일도 일어났다. 이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도 3년째 병행하고 있다. 늘 아이 곁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특수학교를 졸업하니 앞이 더 캄캄해졌다. 대학이나 전문대 진학은 꿈도 꿀 수 없고 장애가 심각해 직업훈련도 불가능하다 보니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찾지 못해 집에만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낮에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고 있지만 저녁과 주말에는 항시 붙어 있어야 한다.

전보다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여전히 치료와 서비스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성인 이용 서비스를 찾아 헤매는데, 서비스 자체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정보도 많지 않아 스무 살 넘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여기저기 헤맨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부모가 없을 때 아이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서른 살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너무 기막히고 끔찍하게 들려서 “당신 편하자고 그러면 못쓴다”고 따졌더니, 엄마가 옆에 있는 지금도 아이가 천덕꾸러기인데 엄마마저 없으면 어떻게 살겠느냐며 흐느낀다.

정부가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니 참으로 기쁘다. 영유아의 발달장애 조기 진단을 지원하고 활동보조인 이용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전신마취가 필수인 치과치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자해나 공격 등 문제행동이 많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전문치료기관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크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이 중증이지만 문제행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부모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몇 가지 보완해 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첫째, 1, 2급 발달장애인 가족이 한 달에 최대 103시간(하루 평균 3.5시간) 활동보조인을 이용할 수 있게 했는데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발달장애인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만큼 시간을 늘려 주었으면 한다. 둘째, 18세까지 제공되는 재활치료 바우처(서비스 무료사용권)의 기한을 30세 정도까지 늘려 주었으면 한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졸업하고 난 후에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살아 있는 동안 아이를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 해도 그 돈이 내 아이에게 제대로 쓰일지 염려된다. 선진국의 제도를 연구해 신탁제도를 도입한다면 부모들이 아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임 지적장애인복지협회 구로지부장
#발달장애#특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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