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현종]‘핵 도미노’ 격랑에 휩싸인 동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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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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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전 유엔대사
김현종 전 유엔대사
일본 의회는 20일 34년 만에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가 안전보장에 기여’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안전보장’ 문구 하나로 핵무장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일본은 이미 히로시마형 원자탄 4800개를 제조할 수 있는 30t의 핵물질과 연료봉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자민당과 오사카 유신회의 우파연합이 승리하고 나면 일본은 핵무장으로 가는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다.

2010년 9월 일본 정부는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자국 순시선을 공격한 중국 어선의 선장을 석방했다. 산업의 비타민인 희토류 수출 금지를 앞세운 중국한테 굴욕을 당한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환호 소리가, 도쿄에서는 울분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일본 서점들에서는 ‘중국이 바다 건너 일본을 침략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책과 잡지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나 오사카 유신회를 거느린 하시모토 도루와 같은 극우파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됐으며 지난해에는 7조3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은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을 국방에 쏟아 붓는 등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항공모함 바랴크를 진수했으며, J-20 스텔스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남중국해의 스카버러(중국명 황옌·黃巖) 섬 분쟁 때 하루 1500만 달러어치의 바나나 수입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필리핀을 굴복시켰다. 미군 철수 이후 해군력과 공군력이 없다시피 한 필리핀은 미국이 손을 떼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필리핀 같은 소국이 대국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명나라 사신이나 썼을 법한 말을 했다.

일본은 경제난에 처해 있고 지난해 3월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만들어진 군사 관련 3대 금기를 완전히 해제했다. 또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응해 항공모함 건조와 ‘무기 수출 금지 3원칙’을 수정하여 무기의 수출을 허용하는 한편 우주법에서 ‘평화적 이용’ 조항을 삭제하여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개발을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 일본의 상황은 청일전쟁에 앞서 군비를 확장해 나가던 19세기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급박한 움직임은 북한의 핵실험과 중국의 부상 때문인데 이는 중국의 팽창을 막고자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과도 부합한다. 14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외교안보전략대화에서 한미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 미국 일본 3각 안보협력이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핵무장 등 일본의 군비 확장을 한국이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남방 3각 동맹이 구축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고 나면 동북아에서 한국만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된다.

우리는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을 순망치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미일 동맹의 강화가 가져올 태풍과 같은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에 치우쳐서는 결코 안 된다. 이념이 아닌 국익과 현실주의정치(Realpolitik)를 고려하여 우리 외교정책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워싱턴이나 도쿄, 베이징의 시각이 아닌 ‘서울의 시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김현종 전 유엔대사
#시론#김현종#핵#동북아#핵실험#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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