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능후]일본의 왜곡된 복지에서 배울 점

  • Array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장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장
20여 년 전 국민연금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법제처에 국민연금법안을 들고 갔을 때의 일이다. 법체계와 조문을 부정적으로 검토하던 법제관이 이웃 일본에 동일 명칭의 법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긍정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면 우리가 시행하는 데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민주당 복지공약 2년만에 “없던일로”


우리의 오랜 롤모델, 일본이 앓고 있다. 연이은 자연재해, 최악의 원전 사고, 장기간의 경제 불황, 눈덩이 정부 부채…. 여기에 더해 왜곡된 복지제도로 인해 일본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당 부분 언론의 과장된 너스레가 끼어 있겠지만 일본은 앞으로도 우리의 롤모델로 계속 남게 될까?

이제 50-20그룹(인구 5000만 명,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하려는 한국이 인구 1억3000만 명, 국민소득 4만 달러인 일본의 앞날에 대해 훈수를 두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험 중 일부를 반면교사 삼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은 후발자가 취할 수 있는 이점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는 저부담 저복지의 자린고비형 복지체제를 영위해 왔다. 예컨대 2005년 기준 일본의 국민부담률(27.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5%)을 한참 밑돌고, 복지 지출(18.6%) 역시 OECD 평균(20.6%)보다 낮다. 세금을 적게 내고, 복지혜택도 적게 누려온 것이다. 노인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2010년 22.6%)에서 낮은 복지 지출을 유지해 왔으니 한때는 효율적인 ‘동아시아 복지모형’으로 불리며 외국의 부러움을 살 만도 했다. 그러나 저부담 저복지가 완전한 답은 못됐다. 양극화 심화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09년까지 54년 동안 권력을 독점해 왔던 자민당은 집권 말기 심화된 소득 양극화와 경제 침체 장기화의 덫에 걸려 권력을 내주고 말았다. 국민들이 더는 자민당 방식의 국가 운영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민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일본 민주당은 아동수당 도입, 고교교육 무상화, 고속도로 무료화 등 대폭적인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걸고 집권했다. 그러나 새 집권당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일본 국민들은 2년 뒤 재원 마련 실패로 공약 실현이 힘들어졌다는 정부 발표에 분노하고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바는 경제권력과 투표권력에 대한 정치권의 접근 방식이다. 현대의 민주화된 국가는 소수에 집중된 경제권력과 다수에 분산된 투표권력 간에 균형추 역할을 수행한다. 효율의 이름 아래 성장을 추구하고 특권을 선호하는 경제권력과 생활 안정을 희구하고 평등을 지지하는 투표권력 간의 갈등은 구조적이고 불가피하다. 상충되는 양대 권력이 조화를 이루게 해 시장의 활력을 담보하면서 국민의 생활 안정을 달성하는 것이 국가 운영을 책임진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재원 확보-재정 지출 조화 이뤄야


정치권이 경제권력과 투표권력을 대하는 전략은 강압과 지원 두 가지다. 강압적인 조세제도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합리적인 재정 지출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강압과 지원 두 전략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집권층의 성격이 드러나고 국가 발전 수준이 결정된다. 강압을 줄이고 지원을 늘리면 남는 것은 국가재정의 고갈이다. 역으로 강압을 늘리고 지원을 줄이면 재정은 안정되지만 사회는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은 강압전략을 경시하고 지원전략에만 골몰한 공통점이 있다. 남은 것은 OECD 최악의 국가부채(GDP의 172.1%)다. 이웃 이야기를 하는데 어쩐지 우리 이야기 같은 찝찝함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장
#시론#박능후#일본#복지#복지 공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