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짝’은 ‘연예인 프리’ 예능혁명에 성공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5일 14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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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예능프로그램의 달라진 트렌드를 포착한 기사가 등장했다. 스포츠조선 12월8일자 기사 '논란 많은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 왜 인기 있나?'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이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3년째 방송을 이어오며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 시청자 고민을 소개하고 사연의 주인공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얘기를 나누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을 들며 "그러나 최근 가장 '핫'한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SBS '짝'"이라고 짚었다.

기사는 "다큐와 예능이 접목된 '짝'은 리얼리티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짝을 찾는 기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남녀간의 서로 다른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재미를 안기고 있는 '짝'은 단순히 시청률로 재단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기사는 '스타킹'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생활의 달인' 'VJ특공대' 등의 선전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럼 이 같은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화성인 바이러스' 연출자 황의철PD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나와 다른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며 "출연자들도 과거에는 TV에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이 컸지만 이제는 자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 기존 사례 변형에 불과

물론 이런 상황을 대중도 이미 눈치 채고 있긴 하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은 현재 양적으로 늘어난 상태다. 일종의 트렌드라면 트렌드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 기사는 그 트렌드의 원인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뚜렷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확대된 건 딱히 환경적 조건이 달라진 탓이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줄곧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어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부턴 그랬다. 출연자들 상황에서나 시청자들 입장에서나 달라진 게 딱히 없다.

나아가 지금 방송 중인 프로그램들은 엄밀히 말해 이전에 시도됐던 포맷의 단순변형에 불과하다. 딱히 신종현상으로 지적할 근거가 없다.

기사 중 언급된 '화성인 바이러스'만 해도 그렇다. 사실상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스튜디오 토크 버전이라 봐야한다. 지금은 반쯤 '동물농장'에 가까워진 분위기지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도 처음엔 특이한 인물들의 특이한 사연에 집중했었다. 수 십 년째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 수년째 아예 잠을 자지 않는 사람 등 지금 당장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해도 무방할 법한 사연들이 소개됐다.

한편 '화성인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특이한 사연을 지닌 일반인들 얘기를 사연고백에서 문제해결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1991년부터 방영된 KBS1 '아침마당'과 별다를 것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아침마당'에서 선정성은 높이고 공익성은 떨어뜨리면 '화성인 바이러스'가 된다는 식이다.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역시 많건 적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짝'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 콘셉트 자체는 이미 있던 것이다. 1994년 시작된 MBC '사랑의 스튜디오'가 효시다. 일련의 일반인 남녀들을 놓고 각종 질문과 상황연출 등을 통해 '짝짓기'를 해준다는 형식적 측면에서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당시 '사랑의 스튜디오'도 '짝'보다 대중반응이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았다. 프로그램 중 등장한 '사랑의 작대기'는 당시 젊은 층 은어로까지 활용되는 인기를 누렸다.

'스타킹' 같은 프로그램들도 당연히 이전부터 많았다. 1997년 MBC '기인열전' 또는 1990년 MBC '보통사람 보통무대'의 후신이란 견해가 있으며, 더 멀리가면 1976~1980년 방송된 MBC '묘기대행진'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견해도 있다.


●'짝'은 '화성인 바이러스'와 다르다?

이러니 근래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 인기에 대해, 황의철 PD 변처럼,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나와 다른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 "출연자들도 과거에는 TV에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이 컸지만 이제는 자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등의 해석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사 콘셉트가 이전부터도 있었고, 수없이 반복됐으며, 늘 인기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퀄리티나 방향성 차원에서도 이전보다 더 선정적으로 변모했다는 점 외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물론 그래도 위 기사가 전제에서 내보인 문제제기는 여전히 남긴 한다. 지금은 확실히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친 상황은 맞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마저 점차 일반인 출연 비중을 높이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KBS2 '남자의 자격'은 지난해 합창단 편의 대성공 이후 아예 일반인 중심 컨셉트에 매진하고 있고, KBS2 '1박2일' 역시 시청자투어 편, 외국인노동자 편 등 근래 들어 일반인 출연 비중을 크게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갑자기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에 시청자 요구가 급증했다고 보는 건 오류다. 대중정서란 그리 쉽게, 큰 획을 그으며 변모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제3시장'이 등장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똑같은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이지만, 그 생성논리와 소비형태로 봤을 때 모두 한 가지 방향인 건 아니란 얘기다. 알쏭달쏭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짝'과 그 원조 '사랑의 스튜디오'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사랑의 스튜디오'나 '짝'이나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출연자들 사정을 돌아보면 꽤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의 스튜디오' 출연자들은 사실상 방송 바로 다음 주만 돼도 잊혀졌다. 프로그램은 살지만 출연자들은 그냥 소모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짝' 출연자들은 현재 계속해서 거의 연예인급 주목을 받아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짝' 출연자들은 '다음 주'에도 또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또 나온다. 방송사가 지정해주는 만큼 더 나올 수 있다.
●'짝'은 미국 '서바이버'식 일반인의 연예인화 전략

이게 바로 2000년부터 시작된 미국 CBS 일반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서바이버'가 내세운 전략이었다. 아무리 평범한 일반인들일지라도 수주~수개월에 걸쳐 계속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며 반복 노출시킬 경우 연예인급 위상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같은 전략이 '빅 브라더'나 '배첼러'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에 적용됐고, '도전! 슈퍼모델'이나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결국 '짝'은 '화성인 바이러스'와 전혀 다른 생성논리와 소비형태를 지닌 프로그램이란 것이다. '화성인 바이러스'류 프로그램은 '특이한'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반면 '짝'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특이한'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화성인 바이러스'류 프로그램에 나오는 일반인들은, 그냥 일반인으로 다뤄지다 일반인으로 소비되고 끝난다. 그러나 '짝'과 같은 프로그램은 다르다. 엄밀히 말해, '일반인의 연예인화'가 모토라 볼 수 있다.

결국 '짝'과 같이 놓고 볼 수 있는 건 '화성인 바이러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스타킹'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생활의 달인' 'VJ특공대' 등이 아니라,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 '1박2일' 시청자투어 편 및 외국인노동자 편, 나아가 M.net '슈퍼스타K'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한 시즌이 끝날 때쯤 되면 그 출연자들은 더 이상 일반인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인과 연예인 사이 특이한 지점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특이한 위상을 계속 생산해가며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자 이목을 고조시키고 시청률 상승을 이루게 된다.

그러니 이들은 '화성인 바이러스'류 '진짜' 일반인 출연 예능프로그램과 기존 연예인 출연 예능프로그램 사이 '제3시장'을 노리는 컨셉트 프로그램이라 보는 게 옳다는 얘기다.

그냥 둔탁하게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으로 묶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똑같이 일반인들이 노래 부른다고 M.net '슈퍼스타K'와 KBS1 '전국노래자랑'을 한데 묶을 수 없듯이 말이다.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의 증가 아닌 '제3시장'이 확립

이렇게 놓고 보면 지금의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 대세도 쉽게 이해가 간다. 기존 '진짜'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의 수는 10년 전, 15년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게 아니다.

심지어 조금이나마 늘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케이블채널도 초창기엔 연예인 섭외력이 부족해 예능프로그램 상당수를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로 '때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3시장' 컨셉트 프로그램들이 밀려오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갑자기 TV는 일반인들로 가득 찬 듯 보이게 됐다. 실질적으론 일반인이라기보다 단기로 써먹는 신인 연예인들이 늘어난 격이지만, 어쨌든 그 정도 착시가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런 '제3시장' 컨셉트 붐이 시작되고 심화된 까닭은 단순하다. 방송사 입장에선 그거 더 남는 장사라서다. 일반인들을 불러들인 뒤 훨씬 적은 돈과 기회비용 투자로 스타급 연예인 기용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왕도 중 왕도다.

당장 지난해 박칼린 신드롬으로 KBS와 '남자의 자격'이 얻어낸 상징자본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또한 그런 식의 발상이야말로 TV의 진정한 속성과 더 잘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TV는 예나 지금이나 스타를 불러들이는 공간이 아니라 스타를 키워내는 공간에 더 가까워서다. 막강한 대중노출도를 통해 무명인을 누구나 아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위 스포츠조선 기사는 사실상 '짝'이 일으킨 현상에 대해 좀 다른 접근을 취했어야 옳다. 굳이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이라 한데 묶어 분석하지 않고, '짝' 하나만 놓고 분석했을 때 더 가치 있는 평가가 나왔을 수 있다. 실제로 '짝'의 의미는 '제3시장' 컨셉트의 정착이란 점에서 훨씬 더 중차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국 예능프로그램들은 일반인 출연 콘셉트를 통해 쏠쏠히 '재미'를 봐왔음에도, 기본적으로 불안감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됐건 '진짜 연예인'이 등장해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는 작업 정도는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각종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MBC '신입사원'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유명인 멘토나 연예인 심사위원 비중을 높인 것이다.

그러나 '짝'에는 정말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완전히 무명의 일반인들만 등장해, 그들끼리 서로 부딪혀가며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는 표상들로 성장해나간다. 미국 '서바이버'로부터 시작된 '제3시장' 공략표본에 가장 충실한 형태다.


●'애정만세'에서 '짝'까지 걸린 9년

이는 생각할수록 꽤나 의미 깊은 사건이다. 해외의 '일반인의 연예인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첫 국내사례는 2002년 MBC '애정만세' 정도로 볼 수 있다. 당시 일반인 여대생이었던 김꽃님이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프로그램을 크게 성공시킨 바 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콘셉트는 일반인 김꽃님 혼자에, 그에 열렬히 구애를 바치는 수많은 남성 연예인들로 짜여있었다. 일반인 한 명을 불러들이는데도 그 정도 불안감이 있었단 얘기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일반인 출연 비중을 높여오다, 마침내 그 완성형 버전인 '짝'이 대중의 동의를 얻기까지 무려 9년이나 걸렸다. 언급했듯, 대중정서란 그리 쉽게, 큰 획을 그으며 변모하는 게 아니란 방증이다.

어찌됐건 '짝'을 통해 이제 물꼬가 터졌으니 '연예인 프리' 일반인 출연 예능프로그램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실험될 수 있을 것이다. 주로는 여성층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연애' '짝짓기' 차원에서 유사 프로그램들이 연발되겠지만, 그에 탄력을 받아 점차 '서바이버'처럼 다양한 차원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처럼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콘셉트는 상대적으로 크게 축소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국처럼 예능프로그램 내 연예인 비중이 아예 휘발될 가능성은 없다. 한국 예능프로그램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일본의 오와라이 게닌과 같은 개그맨, 예능인들이 없으면 이미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태다. 예능프로그램 포맷이 일본의 그것에서 온전히 탈출하지 못하는 한 기존 연예인 중심 예능프로그램들 맥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3시장'이 향후 확대될 가능성은 부단히 높다. 어쩌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근래 특화된 콘셉트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럼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은 연예인 출연 버라이어티, 일반인 출연 버라이어티, 그 외 '특이한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들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로 엄격히 나눠질 수 있다.

만약 그런 흐름이 가시화된다면, 어쩌면 '짝'은 거대한 방송계 흐름에 한 획을 그은 계기로서 방송사에 기록될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MBC '쇼쇼쇼' '유쾌한 청백전', KBS2 '서세원 쇼' 같은 입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짝'의 향후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할 이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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