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영호]워킹맘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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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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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미국 휴스턴에 있는 엠디앤더슨암센터로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엠디앤더슨암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암전문병원이다. 초등학교 3, 4학년에 다니는 남자아이만 둘을 데리고 혼자서 1년간 미국생활을 했다. 계획했던 연수를 국립암센터에서 맡은 호스피스 제도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6개월 미루면서 사정상 아내가 함께 떠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맞벌이 아내에 육아책임 떠맡겨

아침이면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직장에 출근해 연구와 병원 업무를 하다 보면 어느덧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항상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머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공부는 둘째 치고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하는지 염려되고, 학교에서 학부모를 부르는 행사가 있노라면 근무하다가도 일찍 나서야 했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경고장을 받아오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이들만 집에 둘 수가 없는 미국의 제도 때문에 시장을 보더라도 아이들을 항상 데리고 다녀야 했다. 한국처럼 저녁에 남자들끼리 만나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는 골프도 주말에는 동료들과 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바로 족쇄였다.

미국 연수생활 6개월 만에 말로만 듣던 워킹맘의 우울증에 걸렸다. 여자 의사로서 그리고 교수로서의 공적인 삶에 대한 책임과 자녀 교육에 대한 의무로 갈등하다가 교수직을 포기한 동료도 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후배 여자 의사도 있다. 조금이나마 워킹맘의 자녀 교육과 개인 성공의 딜레마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연수를 가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결혼하고 아내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10년 만에 1년 휴가를 준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분야에서 성공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퇴근 후 회의나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며 맞벌이를 하던 아내에게 육아의 책임마저 떠넘겼다. 아내와 몇 차례 논의 끝에 합의한 것 가운데 지금까지도 지키는 몇 가지가 있었다. 평일 이틀은 무조건 8시 이전에 퇴근해 아이들을 봐주고 주말에는 역할을 나눠 일요일 아침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는 동안 아내는 쉬거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아내와 남편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육아와 교육에 대한 배려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이 직장 내 육아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직원과 기업 그리고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또한 직장 내에서 동료의 출산과 육아 휴직으로 업무를 떠안았을 때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땅한 봉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만성질환이 늘면서 과거에는 관심도 없던 질병 예방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이 아니라 건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직장내 육아시설 대폭 확충해야

이번 동아일보의 ‘엄마가 행복한 사회’ 특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환자 간병에 대한 부담도 엄청나다. 치료비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간병 또한 대부분 여성의 몫이어서 환자 간호에 따른 부담으로 직장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아 워킹맘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여성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사회를 행복하게 한다는 설득력 있는 철학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실현 가능한 구체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사회와 기업이 이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취약계층 가정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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