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시골마을에 개발바람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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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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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260쪽·1만1000원·창비

한적한 시골 마을에 레미콘 공장이 들어왔다. 공장은 불법적으로 쇄석기를 들여와 밤낮으로 돌을 깬다. 먼지가 풀풀 날려 꽃 위에 날아 앉고 사람들은 공장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주민들은 “그냥 이대로 살게 해달라”며 공장 앞에서 시위를 한다. 여기까지는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신문 사회면 기사 같은. 하지만 소설은 이 마을과 상관없는 ‘영희’라는 인물을 사건 속으로 끌어들여 독자들에게 “이 얘기는 바로 자신의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영희는 어떤 인물인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된다고 좋아했던 것도 잠시, 운영하던 가게가 철거되며 권리금, 시설투자금을 날리고 집주인에게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는다. 집 얻을 돈도 없어 도시 근교 진평리의 빈집을 찾아 들어가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끌려 엉겁결에 시위에 동참하게 된다.

“에에, 진평리, 평주리, 영산리, 봉현리 등 순양석재공장 피해 인접부락이서 데모를 허는 날입니다.” 동네 이장의 방송 소리에 노인들은 삼삼오오 공장 앞으로 모인다. 30, 40대라곤 영희를 비롯해 서너 명에 불과한 시위대는 무기력하다. 시위 현장을 찍던 형사는 “이러면 영업방해로다가 현장체포감들이여, 우리 언니들이 토옹 뭣을 몰라”라고 이죽거리고, 시위대로 길이 막히자 트럭 기사는 “칵 갈아버릴까보다 그냥”이라며 겁준다. 할머니들이 무시당하자 영희는 울컥한다. 메가폰을 잡고 몇 마디 말한 것 때문에 덜컥 대책위원장이 돼 버린다.

광주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작가의 지인이 겪은 일을 뼈대로 현지 주민들을 만나 사실감을 높였다. 다만 공장과 주민이 재판 중인 사건이라 실제 지명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소설은 2011년 우리 현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확대해 공감을 끌어낸다. 시위라고는 평생 남의 일로 여겼지만 대책위원장이 되고 법정 소송까지 하게 되는 영희, 일감을 찾아 4대강 공사현장을 기웃거리는 영희의 남편 철수, 한국 노모를 모시는 베트남 며느리, 편파적인 기사를 싣는 지역신문, 얼굴만 삐죽 내밀며 사태 해결에는 무관심한 정치인 등. 단지 꾸며진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얘기’다.

무겁고, 딱딱하지 않게 비극을 희극처럼 풀어가는 솜씨도 탁월하다. 베트남 며느리가 시장에서 만난 영희에게 바나나를 건네주자 주위에서 “시위도 안 나올 건디 뭣이 이쁘다고 주냐”라고 한마디 한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할머니들은 천진난만하게 경찰에게 농을 건네고 이 상황이 재미있어 서로 자지러지게 웃는다.

진평리에서 먼저 세상을 뜬 망자의 얘기로 시작해, 시위에 참가했던 할머니가 목숨을 잃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이들은 살갑게 지내던 가족과 동네 사람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맴돈다. 산 사람이 못 지킨다면 죽은 사람이 나서서라도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듯이.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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