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어제의 이웃들이 오늘 학살자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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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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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원자/마크 뷰캐넌 지음·김희봉 옮김/288쪽·1만5000원·사이언스북스

이론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은 ‘사회적 원자’에서 사회를 하나의 물체로, 그리고 인간을 그 사회라는 물체를 이루는 원자(atom)로 이해하면 세상사의 배후에 있는 패턴이나 정밀한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림 제공 사이언스북스
이론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은 ‘사회적 원자’에서 사회를 하나의 물체로, 그리고 인간을 그 사회라는 물체를 이루는 원자(atom)로 이해하면 세상사의 배후에 있는 패턴이나 정밀한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림 제공 사이언스북스
1992년 여름, 보스니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난 난민들이 워싱턴포스트의 피터 마스 기자에게 그동안 겪은 일을 털어놨다. 아뎀이라는 농부는 이웃 마을의 세르비아 사람들이 자기 마을 사람 35명의 목을 베었다고 증언하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세르비아인들은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사람들이었고 추수 때면 팔을 걷고 도와주던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아뎀 말고도 수천 명이 나서 이웃이 이웃에게 등을 돌린 일을 증언했다. 이런 일을 광기 또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심리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훨씬 심각하게 경계해야 할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일까.

1970년대 인도에선 인구 폭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정부는 세 자녀를 둔 가정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다각도로 정책을 펼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남쪽의 케랄라 지역에선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안정세를 보였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되던 인구 증가 추세가 케랄라에서만 유독 꺾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석은 학문 분야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올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주류를 이룬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과학적 접근이 놓치는 부분이 많으므로 자연과학적 방법을 대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물리학자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편집자를 지내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사회적 원자(social atom)’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세계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면 구성원 개개인의 심리나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람도 원자처럼 단순한 법칙을 따른다는 생각 아래 그 법칙에서 나오는 결과의 패턴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수학적 규칙성을 인간세상에서도 찾아내려는 그의 시도는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으로 불린다.

물리학의 가장 큰 연구 목표는 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를 이해할 때도 ‘사회적 원자’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케랄라에서 나타난 인구 안정세는 교육의 확산 덕분이었다. 산아제한 교육 같은 직접적인 교육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 산수 같은 기초교육이었다. 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효과가 컸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지역 구성원 사이에 확산되면서 전체적인 교육수준이 상승했다. 교육수준의 상승은 출산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들은 둘 혹은 하나만 낳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나타난 갑작스러운 민족주의 폭발도 사회적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증폭된 것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최근의 사례로는 200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대도시 근교 소요 사태를 들 수 있다. 파리 근교 일부 지역에서 이민자를 중심으로 시작된 소요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체포된 인원만 3000여 명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집단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라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 원자를 지배하는 규칙을 들어 설명한다. 사회적 원자인 인간은 패턴을 알아보는 데 민감하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원자를 들여다봐도 모든 원자에는 방향이 있으며 외부 요인으로 여러 원자가 한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웃한 원자도 대세에 따라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번 생긴 패턴은 점점 더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군중으로 가득 찬 광장에서 사람들이 이동할 때 사람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가고 누군가는 그 사람을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저절로 일관된 흐름을 만든다. 한번 흐름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이 흐름에 포함돼 흐름은 점점 커진다.

저자는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주는 영향이 강하면 사회 변화는 불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하나의 행동이나 한 사람의 견해에 따라 거의 같은 순간에 변화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채 유행과, 민족주의적 열광과 주식시장의 투기열풍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사람을 사회라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로 보면 루머의 확산, 주가의 등락 등 인간사회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패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집단행동, 모방 등에 대한 해석은 ‘사회적 원자’라는 용어를 내세운 것 말고는 다른 분야의 해석에 비해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각종 과학실험과 실제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실험과 사례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

책에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힌트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 풍부함은 어느 한 개인의 풍부함 덕분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그들의 생각, 작용과 반작용의 어울림이다”라고 강조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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