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20선]<2>적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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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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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의 침묵/주강현 지음/김영사

《“태평양의 문화권 구분도 서구의 발명품이다. ‘태평양 지역(Pacific Region)’과 ‘태평양 사람들(Pacific Islanders)’이라는 개념조차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산물이다. 문화권 구분은 그네들이 태평양에 관해 얻고자 했던 국외자의 창조물이었을 뿐이다. 작은 섬들이 모였다 하여 미크로네시아, 검은 이들이 산다 하여 멜라네시아, 섬이 많다 하여 폴리네시아 하는 식으로 정해졌다.”》
하와이는 미국이 발견한 게 아니다

적도 태평양 지역을 생각하면 먼저 ‘하와이’가 떠오른다. 이때의 하와이란 미국령 하와이다. 그 이전에 있었던 독립왕국 하와이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하와이에 관한 한국인들의 보편적 사고 역시 하와이 원주민의 주체적 역사에 관한 어떤 배려도 들어설 수 없게 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서구의 눈에선 태평양 원주민의 역사가 모조리 선사(Pre-history)로 치부된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선사는 고대 이전의 역사가 아니라 ‘유럽인 도래 이전의 모든 역사’가 된다. 저자는 그 같은 서구 중심 사관을 벗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적도 태평양의 문명사를 살피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해양 탐사선 온누리호를 타고 직접 태평양 군도를 탐방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말처럼 태평양은 결코 ‘태평한 곳’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의 크고 작은 섬의 원주민들은 구미 열강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2만5000개의 섬이 있는 방대한 태평양을 제국들은 가만 두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이 땅을 찾은 제국들은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는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해악을 끼쳤다. 쇠붙이가 없던 이들에게 전해진 쇠붙이는 무기로 사용됐고, 외지인에게 딸려온 질병은 커다란 인명 피해를 일으켰다. 원주민 사회에 출현한 돈의 개념은 사회적 유대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외지인들의 태평양 각축전은 지금도 여전하다. 19세기의 고래잡이, 20세기의 사탕수수 재배에 이어 지금은 온갖 물자를 실어 나르는 해상전이 펼쳐진다. 강대국은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핵폭탄 실험을 해 왔다. “태평양은 국제정치적으로 국익과 주권만 강조되는 ‘격정의 바다’가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와중에 두려움 없이 망망대해를 건너 하와이를 발견했던 폴리네시아인의 역사는 제대로 언급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에 저자는 화산 폭발로 섬이 생성되고, 사람들이 터를 잡고, 서구인이 오기 전까지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갔던 원주민의 역사를 구전되는 노래와 신화를 토대로 복원한다.

온누리호를 타고 항해하면서 마주친 태평양과 산호섬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 수심 5km 지점에서 길어 올린 바닷물을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남극의 물이 적도로 올라와 심해저에 깔리고 다시 순환하는 데 적어도 2000년은 걸린다. 지금 끌어올린 물은 대략 고려시대쯤의 것이겠다. 물을 한잔 마셔 본다.”

낙조(落照)에선 현지의 신화를 떠올린다. “붉은빛이 흰 구름에 파고들어 요란스럽게 구름을 태운다. 해가 넘어가는 마지막 풍경은 태양과 암흑의 치열한 대결을 상징한다. 태평양의 많은 신화 속에서 이를 신들의 전쟁으로 묘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들이 싸우고 있다. 그렇게 매일매일 대양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서구 문명의 해악이 지구 온난화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애초에 유럽인에 의해 직접적인 종족 멸절과 문명 파괴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그네들이 주도한 에너지 과잉소비 문명이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고 꼬집는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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